등록 : 2011.10.31 20:17
수정 : 2011.10.31 20:17
정석윤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통상절차법 제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지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내용을
상세히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단지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를 철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기업 위주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공공정책·복지에 관한 우리나라의 미래, 우리 아이들 세대의 미래를 저당잡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품 무역에 관한 관세는 오히려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고, 농업·의료·중소상공인·투자·서비스·지적재산권·학교급식 등 전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 한번 이루어진 자유화를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래칫 조항’이나, 투자자가 직접 국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와 연결되면 우리나라의 미래에 미칠 영향은 지대하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데 대해 정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상대방이 있다. 우리 정부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선언한다고 하여 그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지막 보루는 국회뿐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대표기관, 입법권과 정부에 대한 감독·통제권을 헌법적 권한으로 가지고 있는 국회가 꼼꼼히 심사해야 한다. ‘꼼꼼함’은 이럴 때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야당에서 제안한 ‘통상절차법’의 제정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 즉 통상교섭본부가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될 통상협정을 체결하는 현재 상황에서, 통상협정에 대한 협상과 절차에 대한 통제는 매우 중요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경우에도 통상협상은 매우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현재도 모든 사항이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미국과 약속하였다는 이유로 국회에 대해서까지 협상 관련 사항을 공개하지 않는다. 일부 비공개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정부의 태도는 지나치다.
통상협정에 효력을 부여하는 데서 상대방과 불평등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이 자국의 법체계를 이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연방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그에 맞게 효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앞으로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협상을 마쳤다고 하더라도, 그 협정문을 상세히 심사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처럼 그것이 법률의 효력을 부여받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존 법률과 충돌하지는 않는지, 충돌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그에 대한 보완대책은 있는 것인지의 문제는 단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회의원 28명이 전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10월2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통상조약의 체결 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이 앞서 말한 우려들을 불식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통과된 법률안은 비록 통상절차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반드시 들어가야 할 조항들, 애초 제안되었던 조항들이 제외됨으로써 결국 껍데기만 남았다. 오히려 통상협상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사유를 포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밀실협상의 위험성을 키웠고, 통상협정 체결 과정에서 국민과 국회의 통제권은 대폭 축소되었다. 31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원내대표들이 통상절차법안과 관련하여 합의한 내용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통상협정을 비준하는 데 국회가 동의하면 체계상 행정규칙에 해당될 만한 조항에까지도 일률적으로 법률과 같은 효력을 부여한 것은 위헌적이다. 결국 실효성이 없다. 정부와 대통령의 속도전 앞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졸속으로 합의한 결과다. 이런 상태로는 절대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
통상절차법은 그 이름만이 아니라 실질적 내용에서도 통상협정의 체결 절차와 이행에 대한 사항을 충분히 담아야 하고, 정보공개와 국회의 통제가 충분히 확보되어야만 한다. 효력에 대한 규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의 법률안으로는 단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과시키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의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통상절차법은 통상협정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일 뿐, 그 자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독소조항을 없앨 수는 없다. 통상절차법의 제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지금은 협정 내용을 상세히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통상절차법의 제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맞바꿀 수는 없다. 현재 상정된 통상절차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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