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31 20:17
수정 : 2011.10.31 20:17
박찬흥 경북 영천고 교사
아이는 밤에 아르바이트를 해서인지
자신의 어려움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적어 놓았다
대입 수시전형이 시작되던 지난 여름방학 무렵 한 학생이 진학실로 찾아왔다.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자기소개서를 썼는데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글을 읽어 보고 나는 몇 군데를 지적하며 너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는 다시 찾아왔다. 나는 다시 너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니 구체적인 경험을 적어오라고 하였다. 아이는 화를 내고 있었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던 모양이다. “선생님! 안 그래도 수능시험 준비 때문에 바쁜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이는 글을 쓰는 내내 고통스러워하며 자기 자신과 싸워야만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다른 아이가 자기소개서와 관련하여 면접 대비를 해야 한다며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래서 나는 빈 교실을 면접실 분위기로 만들어 내가 면접관이 되어 그 학생에게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토대로 질문했다. “학생이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아이는 자신이 자기소개서에 쓴 글을 말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말해주며 다시 질문했다. 아이는 대답을 잘 하지 못했다. 그 자기소개서는 그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꾸민 것이었다. 아이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시전형 서류 제출이 임박했을 무렵이었다. 진이라는 학생이 자다 깬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자기소개서를 들고 찾아왔다. 아이는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부족함과 어려움을 알고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자기소개서에 적어 놓았다. 아이는 자신에게 던져진 모든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치환하려 했다. 형편은 어렵지만 심리치료사가 되려고 하는 아이의 진솔한 글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나는 아이에게 말없이 박수를 쳐 주었다. 진이의 글을 읽은 담임선생님은 진이를 위해 밤늦게까지 면접 대비를 해 주시고, 면접 당일 진이와 같이 면접 장소까지 같이 가셨다.
이번 대입 수시 원서를 내기 위해 아이들은 대부분이 5~7개 이상의 대학에 원서를 냈다. 전형료가 보통 5만원에서 10만원까지 다양하니 아이들은 보통 전형료로 30만원에서 50만원을 써야 했다. 시골 아이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또 아이들은 벌써부터 대학 등록금 걱정을 하고 있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모두 아르바이트를 할 거란다. 고등학생까지도 선택의 여지가 없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생업 전선을 전전해야 하는 이 사회에 아름다운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대학들이 등록금을 올린 뒤 그것을 적립금으로 돌리는 관행이 있어, 그것만 고치면 등록금을 합리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대학은 장사를 하는 곳이 아니다. 진리를 탐구하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근본 문제를 고뇌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키우며 성찰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오히려 대학과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점수 경쟁과 물신주의를 학습시키며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입시를 위해 또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말로 아이들의 거짓과 위선을 묵인하며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러한 세속적 가치가 보기 좋게 미화된 사회에서 요즘 대학과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운동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시작으로 우리 사회가 좀더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여 꿈과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문제의 고통을 이겨내고 극복해내려고 하는 인간의 진솔함이 언제나 인정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빌어본다. 진아! 부디 합격하기를 바란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