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 농부철학자·전 충북대 교수
돈벌이가 목적인 외국병원을 이 땅에 들여놓느냐 마느냐로 옥신각신 드잡이질이 한창인 판에 이런 이야기 쓰면 뻘쭘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정이 절박하니 이런 기회를 타서라도 할 말은 해야지. 1613년, <동의보감>이 출간된 해다. <동의보감>은 조선왕조 선조 임금이 임진전란을 겪으면서도 어의였던 허준을 시켜 1596년부터 1610년까지 15년에 걸쳐 묶어낸 방대한 의료백과전서다. 마지막 편집과 출간은 광해군 시절에 이루어졌지만, 허준이 작업한 기간은 거의 대부분 선조가 통치하던 때와 겹친다. <동의보감>은 이 땅의 남녘과 북녘에서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옛날이나 오늘날에나 그 과학적 내용과 실용성, 그리고 문화사적 가치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613년에 첫판이 나온 뒤로 우리나라에서는 1814년, 1874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출판되었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판을 거듭해서 찍었다는 기록이 있다. 요즘 식으로 따지면 ‘해적출판’이 중국과 일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셈이다. 휴전선 북쪽에서는 일찍부터 ‘인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이 책이 지닌 쓸모에 눈을 뜨고 ‘인민’에게 두루 읽힐 요량으로 1962년에는 의학출판사에서 쉬운 우리말로 번역해서 냈고, 1982년에는 그 번역을 다시 손질하고 주석을 붙여 원문과 함께 다섯권으로 두툼하게 묶어 출판했다. 2년 뒤인 내후년은 <동의보감> 출간 4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해를 기념해서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여러 가지 행사가 계획되고 있다고 들었다. 마땅히 기념행사가 있어야겠지. 그러나 이게 일회적인 기념행사로 그치고 그에 버금할 만한 국민 전체 건강을 위한 의료대책이 서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동의보감>에 버금하는 <동의본초도감>을 편찬하는 일을 민간 차원에서 5년째 계속해오고 있는 ‘민족의학연구원’을 소개하려고 한다. 민족의학연구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재단법인이다. 이 기관이 보건복지부가 인정하는 재단법인이 된 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재단법인 설립에 발 벗고 나선 사람들이 이 법인 등록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기울인 노력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아닌 말로 법인 설립 관계자들이 2년 반 동안 보건복지부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거나 불려 갔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그래, 세종 임금 때는 두 차례에 걸쳐 <향약집성방>과 <의방류취>라는 방대한 의료전서를 ‘어린 백성’들의 건강을 위해서 펴냈고, 선조 임금 때는 임진전란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나라 재정이 바닥이 났는데도 <동의보감>을 묶어내게 해서, 노골적으로 임금에게 손가락질하면서 등 돌리는 민초들 건강을 지키려고 애를 썼는데, 그 뒤로 400년이 가깝도록 역대 지배자들이나 정부에서 ‘모르쇠’로 팔짱끼고 의료백과전서 출간을 미루고 있었으니 말이나 되는 일이냐, 이제라도 옛 의료백과전서에 버금하는 의료전서를 국가 차원에서 편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당시에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김근태와 그 뒤를 이은 유시민에게 <동의본초도감> 출간을 위한 연구원 설립 계획서를 제출하고 필요성을 공유했다. 그런데, 어럽쇼! 장관이 바뀌자마자 재단법인 설립 신고서가 반려되는 것 아닌가. 그것도 두 차례나. 장관은 고개를 끄덕이는데 ‘밑’에서 고개를 외로 꼬는 사람들이 있고, 언제 어떻게 임기가 끝날지 모르는 장관은 ‘허세’이고, ‘밑’이 ‘실세’임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보건복지부 해당 부서 과장까지 낀 실무인력들이 1년이 넘게 매주 주말이면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세운 연구원 사업계획서는 중간에 유출되어 유사단체가 그 계획서를 짜깁기한 계획서로 먼저 법인을 등록하게 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내 참! 민족의학연구원을 보건복지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등록하려고 한사코 애쓴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재정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정부 공신력의 뒷받침이다.<동의본초도감>의 ‘동의’는 <동의보감>에서 따온 이름이다. 허준이 ‘남의’와 ‘북의’를 뭉뚱그린 ‘한의’라는 말을 버리고 ‘동의’를 고집한 것은 우리 민족의 건강은 우리 손으로 우리 약재를 써서 지키자는 뜻이었다고 본다. 물론 허준은 ‘우리 것’만 고집한 것은 아니다. 1400종이 넘는 ‘향약’에 곁들여 여러 ‘한의’ 서적에 집대성된 그 당시 최신 의료성과까지 두루 섭렵하며 <동의보감>을 저술했다. 이 전통을 이어받아 남북을 가리지 않고 이 땅의 최신 의학지식과 임상경험, 의료역량을 한데 모으고, 덧붙여 중국과 일본과 그 밖의 나라의 성과까지 참고해서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의 건강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의료백과전서를, 30년이 걸려도 좋고 50년이 걸려도 좋으니, 한 해에 한 권, 두 해에 한 권이라도 차례차례 펴내자면 무엇보다 먼저 남북 의료역량의 자유로운 교류가 필요하다. 서울에서든 평양에서든 베이징에서든 필요할 때마다 의료관계자들과 학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모여 머리 맞대고 그동안 축적된 방대한 임상경험과 의료성과를 공유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른 측면에서는 남과 북 사이에 긴장관계가 조성되더라도 의료 분야에서만큼은 경색되는 국면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바로 그런 뜻에서 설립신고서가 여러 차례 반려되는 곡절을 겪으면서도, 또 재원의 뒷받침이 의심스러우니 정 재단법인을 보건복지부 산하에 두려면 몇억 단위가 아닌 몇십억 단위의 재원 마련 구상을 밝히라는 복지부의 요청에 따라 조그마한 출판사가 스무해 가까이 걸려 가까스로 마련한 5층 건물을 흔쾌히 재단에 기부하는 절차를 밟아 재단법인 설립 허가서를 받아낸 것이다. 민족의학연구원에서 이제까지 해온 일, 앞으로 할 일은 <동의본초도감> 편찬 같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일뿐만 아니라 국가재정을 아끼고 튼튼히 꾸리는 일과도 직간접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민족의학연구원이 직영하는 ‘문턱없는 밥집’에서 벌이고 있는 ‘빈 밥그릇 운동’은 음식쓰레기를 고춧가루 한 알갱이도 남기지 않는, 그야말로 ‘국민의 건강도 지키고 국가재정도 절약하는’ 큰 뜻을 지닌 운동이다. 되살림가게인 ‘기분 좋은 가게’가 벌이고 있는 운동도 온 국민이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자원 재활용과 절약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인천으로, 안산으로, 하남으로 지역의 경계를 허물며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물질자원의 측면에서는 가난한 나라에 들지만, 생명자원의 측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넉넉한 자원부국이라고 할 수 있다. 3면이 바다여서, 그리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너른 갯벌을 끼고 있어서 어족자원의 잠재력에서 어느 나라보다 앞서고, 북녘은 식량 사정으로 헐벗은 산들이 많지만 남녘은 거의 다 푸른 숲으로 우거진, 약초와 목재의 이용 가능성이 높은 천혜의 자원이 국토의 70%에 이르는 너른 땅에 잠재해 있다. 그리고 공기도, 땅도, 물도 많이 오염이 되어 있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 만한 평지의 인구밀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고, 아직까지 사막화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살기 좋은 땅이라는 뜻이 아닌가. 민족의학연구원은 <동의본초도감> 편찬 작업을 5년 전에 시작했는데도 아직도 첫 권을 못 내고 있다. 그만큼 진척이 더디다. 이 연구원의 연구 인력이 일을 굼뜨게 해서 늦어지는 게 아니다. 그동안 민족의학연구원이 낸 책으로는 <약 안 쓰고 병 고치기>, <손 주물러 병 고치기>, <발 주물러 병 고치기>, <고루 먹고 병 고치기> 같은 ‘약손문고’가 있다. 책 이름만 들어도 이 단체에서 하려는 일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나는 이런 소망을 품기도 한다. “이런 책을 형편이 넉넉한 의사협의회나 약사협의회 같은 곳에서 한꺼번에 많이 사서 회원들에게 고루 한 권씩 나누어줄 수 있으면 오죽 좋아. 그러면 민족의학연구원 재원 마련에 큰 보탬이 됨 직한데.” 민족의학연구원은 실체가 없는 반 유령단체가 아니다. 현재 이 연구원의 이사장은 현직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이고, 이사진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명망 높은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이 있다. 내가 민족의학연구원 초대 이사장이었을 때 조그마한 출판사인 보리출판사에서 건물을 기증하고, <동의본초도감> 편찬을 위해서 적잖은 재원을 뒷받침했다. 그런데 이제 여력이 없다. 나라가 예산을 뒷받침할 형편이 안 되면 뜻 맑은 착한 기업이라도 나서서 이 일을 계속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뜻에서 현재 농사일도 접어두고 보리밟기에 볼모로 잡혀 있는, 내년에 칠순을 맞는 노인네가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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