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6 19:13
수정 : 2011.10.26 19:13
양미화 성남교육희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최근 소질과 적성, 그리고 ‘꿈’에 바탕을 둔 진로교육이 진보 교육감 당선 이후 혁신학교 이외에 일반 학교로도 확산되고 있다. 이는 서열화된 등수에 바탕을 두고 단순히 어느 학교에 갈 수 있는지 ‘배치’에만 치중하던 기존 ‘진학지도’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흐름이라 하겠다. 또한 ‘꿈’을 통해 자발적인 학습 동기를 유발하고, 개인 인생설계의 기초가 됨은 물론, 사회화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각 단위 학교에서는 소질·적성 계발에 더해 학생들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진로 프로그램들을 늘리고 있다. 특히 다양한 직업 세계를 소개하기 위한 학부모 진로 특강을 개최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은 그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행상에서 커다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직업을 소개해야 할 진로특강이 일부 유력한 직업들-예컨대 대기업 임원, 의사, 변호사, 교수, 기자, 시이오 등-로만 국한되는 편향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 ‘학생들의 꿈조차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이 ‘유력한’ 직업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학생들의 진로 선택을 제한·왜곡할 우려가 크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직업들을 갖게 될 것이지만, 바로 이런 직업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가고 유지해 나가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직업들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다양한 직업군을 알고 자신의 소질과 적성, 그리고 능력에 걸맞은 직업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진로교육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편향은 진로교육에서조차 공부 잘하는 학생을 우대하는 편향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유력 직업군은 경쟁이 치열하여 성적·스펙은 물론, 가정의 지원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른바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박탈감만 안겨줄 수 있다. 현재 학교에서는 실적에만 눈멀어 일부 ‘우등생’만을 우대하고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사실상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의 꿈을 찾아주는 것이 ‘공적 기관’으로서의 학교의 책무일 것이다.
이는 동시에 학부모 학교 참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문제점도 갖는다. 학부모 진로특강은 학부모들의 대표적 학교 참여 사업인데, 유력 명망가들만으로 진로특강 강사진을 구성한다면, ‘명망가’만이 학교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오해가 야기될 수도 있다.
이와 더불어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진로교육이 내용적으로도 오직 ‘개인적 차원의 성공’만 있을 뿐 ‘사회적 책무성’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만일 한 교사의 ‘꿈’이 방학과 정년보장에 국한된다면 우리가 어찌 그 교사에게 우리 아이들을 마음 놓고 맡기겠는가? 물론 개인의 성장에 대한 지향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비전’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더 많은 관심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단순 ‘스펙’을 위한 형식적 전시행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 역시 지적하고 싶다. 최근 입학사정관 전형 대비를 명분으로 교육적 효과보다는 사진 촬영과 증명서 발급 등에 더 열중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특히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진로 프로그램의 참여자 수 늘리기에 급급하여 준강제성을 띠거나 정기 고사 직전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신청받느라 면학 분위기를 해쳐 교사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의 원성을 산 사례도 있다. 따라서 진로교육은 산발적, 이벤트식으로 행사 치르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왜 이 시기에 교육해야 하는가’, ‘어떤 직업 철학을 가르칠 것인가’와 같은 교육학적 성찰과 고민을 바탕으로, 정규 교육과정(수업시간)에 프로그램들을 녹여내기 위한 노력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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