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17 19:25
수정 : 2011.10.17 19:25
이준희 성균관대 사회학과 1학년
진짜 주인공들을 기다릴 테다
변화의 주체인 ‘철수와 영희’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릴 테다
우리나라 이야기를 해보자.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가 우리 사회에 남긴 최고의 이슈는 무엇일까. 그는 그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 칭한 ‘무상 복지’ 논쟁을 이슈로 남기고 싶어 했을까. 혹은 오세훈이라는 인물에 대한 대권주자로서의 재평가를 원했을까. 그가 무엇을 원했건 간에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최대의 이슈는 ‘안풍’, 즉 안철수 열풍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 원장은 서울시장 후보로 이야기가 나오더니 ‘불출마 선언’을 한 뒤에는 순식간에 대권주자로 성장했다. 또한 그가 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지지 선언을 했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역시 지지율 5%에서 단숨에 50%를 얻으며 야권 단일후보로 자리매김했다.
안철수·박원순이 어떻게 이 정도까지 떠오를 수 있었을까. 물론 그들 개인이 훌륭한 점들이 있겠으나, 역시나 사회적 현실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시작되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절정에 달한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삶을 너무나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극한의 경쟁에 내몰렸고,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상 시달렸다. 게다가 기득권은 부패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장관 딸’을 이길 수 없었고, 행정고시에는 ‘국회의원’의 입김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검열해야 했다. 트위터에서 장난으로 ‘김정일 만세’를 외치면 국가보안법으로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세상을 바꿔줄 ‘백마 탄 초인’을 기다렸고, 그때를 맞춰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철수와 원순’이다.
이번엔 바다 건너 나라의 이야기를 해보자. 저 멀리 태평양 건너, 금융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미국의 월가에서는 한달 전부터 ‘월가를 점거하라!’는 구호와 함께 월가 점거 시위가 시작됐다. 사회운동이 죽은 것처럼 느껴졌던 미국에서 시작된 이 시위는, 미국 전역을 들끓게 하고 이제는 바다를 건너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마르크스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를 외쳤다면 저들은 ‘만국의 99%여, 단결하라’고 외치고 있다. 평범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현상과 미국의 월가 점거 시위의 핵심적인 차이는 뭘까? 먼저 안철수 현상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정한 개인이 변화의 주체로 떠오른 현상이다. 어디선가 영웅이 나타나 이 암흑 같은 시대를 변화시킨다. 그런 기대가 모인 것이다. 그러나 월가 시위는 다르다. 월가 시위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시작했고, 평범한 이들이 함께 만들어갔다. 우리 주변의 ‘돈 없고 빽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변화의 주체로, 직접 거리로 나선 것이다. 변화를 바라는 이들이 그 바람을 특정 개인에게 건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변화를 쟁취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껏 세상을 바꿔온 것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자. 동학농민운동,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세상을 바꾼 사건들의 주체는 누구였던가? ‘철수와 원순’ 같은 특정 개인이었던가, 아니면 우리 주변의 흔하고 흔한 ‘철수와 영희’였던가. 나는 우리 사회의 변혁의 주체가 분명히 ‘철수와 영희’였다고 생각한다. ‘철수와 원순’은 존경받을 만한 인생을 살아온 훌륭한 분들이다. 그러나 나는 변화의 주체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 바로 당신과 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서울을 점거하라’ 운동이 진행된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운동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거리로 나가 기다릴 테다. 철수와 원순이 아니라 진짜 변화의 주인공들을 기다릴 테다. 진정 변화의 주체인 우리 사회의 ‘철수와 영희’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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