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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0 19:40 수정 : 2011.10.10 19:40

류은숙 서울여성회 회장

최근 <도가니>란 영화 한 편으로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고 뒤늦게나마 이른바 ‘도가니법’이라는,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더욱 강력한 법까지 제정되는 과정에 있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문제는 사회적 힘이 있는 집단 혹은 개인이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집단 혹은 개인에게 언제든지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의 재현이다. 또한 그러한 폭력은 힘이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 갖고 있는 권력에 의해 덮여왔다. 심지어 냉혹하게도 그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기도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건들도 지금껏 있어왔다. 가슴 아프고 격분스럽게도 우리 사회가 성폭행에 대해 관대하다면 힘의 논리가 적용되고 제도적·법적 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사건은 언제든 또 벌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도가니>에 공분하는 사이에 주한미군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다. 또 일어났다. 지난 9월24일 새벽 4시 만취 상태의 주한미군 제2사단 소속 ㅋ 이병이 ㄱ양을 흉기로 위협하고 가혹행위까지 저지르며 성폭행했다. 처음 출동한 경찰은 현장보존 조처도 하지 않았으며 범행에 쓰인 흉기도 이틀이나 지나 수거했다. 검찰은 비판적 여론이 일자 사건 발생 12일 만에 ㅋ 이병을 구속기소했다. 그런 와중에 9월17일 서울 마포에서도 미 8군 제1통신여단 소속 ㄹ 이병이 여고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도가니 열풍’을 매일 보도하던 언론은 그에 비해 큰 이슈로 다루지 않았다. 한·미 양국은 다른 때와는 다르게 신속히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사과란 말이 좀더 빨리 나온 것일 뿐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 노력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사과를 한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해 7월2일 9·11 테러 이후 시행해오던 미군의 심야통행금지를 해제하면서 “한국은 주한미군 장병 가족들이 생활하기에 안전한 곳이고 우리가 근무 정상화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통금을 해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엄연히 주권이 있는 이 나라 국민들의 안전은 고려되지도 않았으며, 이후 미군 범죄에 대한 적극적 조처와 노력은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이번 주한미군 성폭행 사건에 대해 미국 정부의 확실한 사과와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개정 촉구를 요구했다. 답변에 나선 외교부는 우리나라 소파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불평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대답을 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안전과 보호를 책임지는 국가기관의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질의와 요구를 한 국회의원들도, 답변을 한 외교부의 책임자들도 이른바 ‘도가니법’을 대할 때와 상이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주권을 지키는 일에 소극적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론만으로 대하는 관료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번에 이루어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공개적인 정식 사과를 요구하고 재발방지를 약속받아야 한다. 주권이 있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요구할 수 있는 당당함으로. 또한 그것은 말뿐이 아니라 불평등한 소파의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이명박 대통령이 더 이상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길이며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소파 개정이 강대국의 이해와 요구에 짓밟힌 대한민국 국민들의 절박하고 절실한 목소리이다.



똑같은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박태인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만약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 남성이 미성년자를 성폭행하고, 고문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졌다면 어떻게 될까?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모든 미국의 언론은, 성폭행범 보도의 전례대로 용의자의 얼굴을 포함해 밝힐 수 있는 그의 모든 신상을 공개할 것이며, 캘리포니아 법정은 비록 용의자가 초범일지라도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할 확률이 매우 높다. 2010년 캘리포니아 의회는 미성년자에게 감금 및 고문 등이 병행된 성범죄를 저지른 자는 초범일지라도 임시 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렇다면 2011년 경기도 동두천 고시텔에 잠입해 10대 소녀를 4시간 동안 성폭행하고 변태적인 행위를 한 주한미군 제2사단 소속 ㅋ 이병이 받을 최대 형량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법률을 따를 경우, 법원은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성폭행에 지나치리만큼 관대한 우리나라 법원의 전례와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저지른 성폭행에 대해 선고한 과거 형량을 고려해보았을 때, ㅋ 이병이 종신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생각한다.

2001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이 개정된 이후, 성폭행을 저지른 미군에게 한국 법원이 선고한 최대 형량은 올해 2월 한 노부부 집에 침입해 아내를 성폭행하려다 도망친 로이드 이병에게 내려진 7년에 불과하다. 2008년 당시 8살 초등학생을 성폭행해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조두순에게 법원이 선고한 형량은 12년이었고, 영화 <도가니>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광주 인화학교 사건에서 장애 학생을 성폭행한 전 교장 김아무개씨가 법원으로부터 받은 형량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었다. 비록 지난 4월, 법원이 여중생을 성폭행 뒤 살해한 김길태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 성폭행범에게 법적 최고 형량인 무기징역을 가하는 것은 언론에 뉴스거리가 될 만큼 드문 일이다.

성폭행범에 대한 한국의 엄격한 법률은 법원한테는 무늬에 불과한 것이다. 조두순 사건 판결에서 법원이 직접 밝혔듯, 2008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강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왜 한국 법원은 성 관련 범죄자에게 이리도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일까? 이는 성폭행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통념들과, 권력을 지닌 사회 윗사람들의 여성인권에 대한 매우 낮은 수준의 이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선 성폭행의 책임이 피해자인 여성의 ‘야한 옷차림이나 말투’ 때문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성폭행 수사를 하는 경찰이 피해 여성에게 모욕을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한 연예인은 우리나라 유력 인사들에게 성상납 강요를 받다 결국 목숨을 끊었으며, 대학생들에게 “다 줄 생각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라고 말한 강용석 의원은 여전히 국회의원 배지를 가슴에 단 채 여의도로 출근중이다. 지난 6월, 트위터로 한 여학생에게 외설 사진을 보내 논란이 된 미국의 앤서니 위너 하원의원이 즉각 사퇴했던 모습과는 매우 비교되는 현실이다.

성폭행범은 법정에서 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성폭행의 피해자가 평생 짊어져야 할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고려한다면, 성폭행범을 향한 사회의 시선은 한층 더 엄격해져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은 더 확장되어야 하며, 그 권리를 보호할 권력을 지닌 사회 윗분들의 여성인권에 대한 시각은 수정되어야 한다. 한 여성의 인권은 내 어머니의 인권이기도, 내 사촌 여동생의 인권이기도, 내가 사랑할 사람의 인권이기도 하기에 성폭행범에 대한 법원의 합당한 처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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