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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8 19:30 수정 : 2011.09.28 19:30

이광국 전교조 인천지부 공교육정상화추진단장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을 교육의 ‘수요자’로 보는 관점이 학교 현장에서는 일반화되었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공급자’일 수밖에 없을 터인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단순히 지식의 공급과 수요 차원에서 바라봐서만은 안 된다. 입시경쟁 사회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 성장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배움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학교로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학교에서는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고사하고, 지식의 공급 및 수요 차원에서조차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교육 실태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방과후 학교’라고 불리는 강제 보충수업이다.

서울·경기 등에선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을 강제로 시행하는 학교는 많지 않다지만,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아직도 늦게까지 학생들이 학교에 강제적으로 남아 있으며, 밤 10시 이후에도 이어지는 학원 수강 등으로 학생들의 건강 상태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체력적인 면에서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학습량을 제공할 때, 학습 효율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지난해 초·중·고교 학업 중단자 수만 6만여명에 이른다. 절반 이상이 고교생이며, 또 그중 절반에 가까운 1만5267명은 학교 부적응이 원인이라고 한다. 교육당국이 부추긴 과열 입시경쟁이 이 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한편 방과후 학교와 관련해 소비자고발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제보를 해도 될 정도의 심각한 사례들도 있다. 일부 중학교에서는 국어·영어·수학 등 이른바 주요 교과 위주로만 수업을 편성하다 보니, 이들 교과 담당 교사가 출장 등이 있는 경우에는 도덕·음악 교사 등 관련이 전혀 없는 교사들이 미리 짜놓은 순번에 따라 영어나 수학 수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유인물만 나누어주거나 자습을 시키는데, 이때 교사가 받게 되는 강사비에 학생들이 수업을 받지 않았는데도 결과적으로 학교의 강압에 못 이겨 낸 돈이 포함되어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또 방학 때에는 학생들이 여러 사유로 방학 중 보충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도 학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별로 편차는 있겠으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미 걷은 수강료를 환불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번만이라도 학교에 나오도록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출석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교사들도 수업이 없는 시간에 수업 준비에 힘을 쏟는 대신 학생들을 어떻게든 학교에 나오도록 전화로 독촉하는 일이 방학 중의 주된 업무가 된다.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 등을 무조건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진로에 따라 보충수업이나 심화학습, 수월성 교육 등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으며 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할 책임이 공교육기관에 있다. 그러나 학생에 따라 정규 교육과정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도 이들에게까지 천편일률적으로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천에서는 전국 최초로 이른바 ‘학습선택권 보장 조례’를 뜻있는 시민들이 청원하고 시의원들이 발의해 지난 22일 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바 있다.


29일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시교육청은 그동안의 수동적 교육방식에서 한발 나아가, 새로운 교육정책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인천 지역에서는 방과후 교육과정이 강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단, 학생들이 정규수업 뒤에도 학생의 학습 동기와 수준에 따라 교과 또는 교과 외의 다양한 교육·문화 인프라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스템 강화, 정규수업 내실화 정책 추진, 도서관 및 교과 내외 특기적성 프로그램 활성화, 혁신학교 체제 도입 등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는데, 교육청이 이러한 후속 정책 대안을 마련하여 실천하지 않는다면 방과후 학습을 강제로 하지 못하게 한 공교육 정상화의 노력이 오히려 퇴색될 수 있다는 것을 교육당국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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