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23 19:36
수정 : 2011.09.23 19:36
지성표 국립강릉원주대 무역학과 교수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통해 하위 15% 대학을 발표했다. 또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국공립대학만 따로 하위 15%를 공개할 예정이다. 자녀가 비싼 등록금을 내며 대학을 다녀도 취업이 되지 않는 학부모들은 교육당국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볼지 모른다.
특히 변화를 거부하고 방만한 운영을 하는 국공립대학에 칼을 빼든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판단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없어져야 할 대학이 국민의 세금만 축내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로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구조조정의 후폭풍은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역거점 국공립대학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차지하는 공공적·경제적 역할이 적지 않다. 이런 점을 도외시한 채 ‘취업률’ ‘충원율’이란 잣대로만 국립대학을 서열화해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현재 대학이 거의 균질화된 상황에서 상위 85%와 하위 15% 국공립대학 사이에 차이는 거의 없다. 굳이 등급을 매긴다면 대학교의 자체 노력보다는 대학교가 속한 도시의 크기, 비인기 기초학문 학과의 다수 보유 여부 등에 의해서만 나뉘어진다. 결국 중소도시에 존재하는 국공립대학이 먼저 칼을 맞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 구조조정의 맹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된다면 지역과 대학은 불능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우선 하위 15% 대학에 포함돼 ‘불명예스러운’ 낙인을 받는 국공립대학의 다수 교원들은 다른 대학으로 전직을 하거나 개인주의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학부모들도 자녀의 입학을 주저하면서 결국 국공립대학이 공멸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사실상 유일무이한 지역 내 산학 기반마저 무너져 자칫하면 중소업체 전체가 생존 기반을 잃을 수 있다. 도시는 활력을 잃게 되고 지역 공동화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국공립대학은 기초학문 중심의 비인기학과를 구조조정의 도마에 올려놓고 단기간에 취업률·충원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힐 것이다. 따라서 대학의 뇌라고 할 수 있는 기초학문은 점점 사라지고 지역문화의 역동성마저 훼손될 것이다.
대학의 본질은 명예와 진리를 먹고 사는 곳이다. 문화·예술·철학·문학을 논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대학 구조조정의 ‘정의’대로라면 지역민은 기초학문은 필요 없고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런 정의라면 국민을 모두 수도권으로 몰아넣고 반값 등록금의 혜택을 주며 취업률이 좋은 대학에 자녀가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역 국공립대학의 존재 의미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정책 방향이 그래도 ‘정의’라는 교육당국에 묻고 싶다. 과연 정의인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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