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19 19:35
수정 : 2011.09.19 19:35
배한나 서울시 강서구 가양2동
정부가 서민이 아닌 입장에서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려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한 도시개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학생입니다. 저희 아파트는 환경적 특성상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외부에서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저희 단지 안를 걸으면서 “이 단지는 올 때마다 정말 쓰레기 같다”며 비웃는 소리를 들었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저희 단지 환경이 건전하지 못한 곳이라는 것은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확실히 아이들의 교육상 좋지 않은 곳이고, 범죄와 비행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순전히 빈곤층이 모여 사는 동네만의 잘못일까요?
요즘 저희 단지는 환경조성공사에 한창입니다. 화단을 가꾸고, 경비실을 새로 만들고, 현관 보안시스템도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방황하는 이들은 오히려 더 늘었습니다. 중풍에 걸리신 옆집 할머니는 전동 휠체어를 옮겨줄 사람이 없어 매주 일요일에 교회를 가실 때마다 여전히 불편해하십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부모님께 수시 원서 값을 달라고 하기가 죄송하다며 얼굴을 붉힙니다. 술에 취해 죽은 듯 벤치 위에서 잠든 이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얼마 전 <한겨레>에 보도된 ‘ㄱ초등학교 이전 사건’도 저희 아파트와 관련된 일입니다. 제가 그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 학교 아이들은 차별 속에서 상처를 받고 있었습니다. 신문에는 초등학교만 자세히 보도됐지만 바로 옆에 있는 ㄱ중학교도 이전된다고 합니다. 차별받는 것도 서러운데 나의 모교, 혹은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내 아이는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없어지려고 합니다. 출신 배경에 따른 차별을 겪게 하기엔 너무나도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입니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아파트 환경이 아닙니다. 먹고사는 것이 보장되고, 문화생활로 마음의 여유도 얻을 수 있는 사람다운 삶입니다. 가난하다고 차별받지 않는 삶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이것저것 탓하며 복지정책을 두고 서로 입씨름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죽어갑니다. 사회복지통합망이라는 ‘함정의 그물’로 무고한 이들을 걸러내더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들도 꿈이 있었고, 한때는 좋은 배우자로, 좋은 엄마·아빠로, 좋은 아들·딸로 살아보고 싶었지만 가난의 벽 때문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도 정책도 다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정부와 정책이 서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을 기만하고 있는 탓입니다.
더이상 가난이 죄가 되는 사회에 이들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정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색안경을 벗고 직시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민이 아닌 입장에서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려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부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어려운 사람들을 정부에 기대어 살려고 하는 도둑이나 실패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사람인데, 누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빈부격차를 줄이는 일은 개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회범주적 노력이 있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차별이 사라진 학교에서 다 같이 입을 모아 노래하고 눈을 반짝거리며 공부할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요.
하늘은 높아지고 날씨가 더 추워졌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추위 속에 신음하는 서민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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