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14 19:30
수정 : 2011.09.14 19:30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피의사실 보도로 여론 재판이 끝나면
법관은 들러리나 혁명투사가 돼야 한다
어느 쪽이건 사법 불신은 깊어진다
지난 며칠간 언론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건 보도에 열을 올렸다. 검찰은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듯 브리핑하고, 독자들은 마치 수사 상황을 보고받은 검찰 지휘부나 된 듯 피의자의 유무죄를 가늠해 보고, 각자의 성향에 따라 검찰의 열성적 사건 수행을 칭찬하거나 편파적 표적수사를 규탄하였다. 수사 과정 내내 피의자의 유무죄에 관한 ‘정보’를 접한 독자들은 법원이 판단할 때쯤이면 저마다 사건 전모를 훤히 꿰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러다 구속 영장이 발부되면 예측이 빗나간 자들과 맞아떨어진 자들 간에 사법부에 대한 극단적인 성토와 옹호가 엇갈린다. 인터넷 매체에는 곽노현 교육감 영장 발부 판사에 대한 ‘신상털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영장이 기각되었더라면 보수 정론지를 자처하는 신문들이 그 판사의 신상을 샅샅이 뒤져가며 온갖 야유를 쏟아부었을 것이다.
이것은 언론 자유가 아니라 야만이요, 합리성에 근거한 공적 토론이긴커녕 맹목적 확신을 앞세운 멱살잡이이며, 정치적 갈등 세력 간의 대리 전투에 동원되어 망가진 사법부의 무너진 돌더미 위에서 벌이는 투석전이다. 이런 구태와 악습은 청산할 때가 되었다.
탐사 보도와 피의사실 보도는 구분되어야 한다. 부패와 비리를 수사기관이 덮으려 들 때, 언론은 그 실상을 파헤치고 보도해야 한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의 각종 비리 혐의가 드러나는데도 검찰이 미온적 태도로 감싸고돌 때 언론은 그 내막을 까발려 보도함으로써 검찰을 압박하였다. 이것은 언론의 책무이다. 그러나 수사가 시작되고 피의자가 특정된 사안에 대한 보도는 성격이 다르다. 수사중인 사안에 대한 보도는 시의성도 있고 흥미롭긴 하지만, 검찰이 언론을 내세워 여론몰이를 하거나 언론이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훈수를 두는 수단이 된다. 더 큰 폐해는 그 사건을 판단해야 하는 법관이 엄청난 여론의 압박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연일 거듭된 보도로 확고한 예단을 모두들 가진 상황에서 판결을 내려야 하는 법관은 어떤 판단을 하건 정파성에 대한 의혹과 비난을 사게 된다. 피의사실 보도로 여론 재판이 이미 이루어지고 나면, 법관은 뻔해진 결론을 추인하는 들러리 신세가 되거나 여론의 압박을 무릅쓰고 깜짝쇼를 벌이는 혁명투사가 되어야 한다. 어느 쪽이건 사법 불신의 골은 깊어지게 되어 있다.
영국은 재판을 앞둔 사안의 유무죄를 예단하는 보도를 금지한다. 언론 자유를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품격을 지키기 위함이다. 영국 정치인들은 정치적 갈등을 형사사건화하려 들지 않는다. 영국 정치인들이 고상해서가 아니라, 수사가 개시되면 그 사안에 관한 보도가 금지되므로 오히려 정치 쟁점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심지어 대통령 선거 판세마저도 후보자에 대한 고발사건 담당 검사의 처분에 달려 있어 온 국민이 그 검사 입만 쳐다보는 사태가 한두번이었던가? 이런 환경에서 검찰이나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을 운운하는 것은 가소로움을 넘어 가증스런 기만이다.
재판을 앞둔 사안의 유무죄를 예단하는 보도가 허용되면, 정치 갈등은 형사사건화할 수밖에 없고 정치권 눈치를 봐서 알아서 기는 판검사는 언제나 나타나게 마련이며 독자들은 연일 보도되는 흥미진진한 진실게임을 연속극 보듯 탐닉하며 유무죄를 점치다가 판결이 내려지면 투전판에 돈을 건 노름꾼마냥 환호와 낙담의 갈림길에 서는 신세로 전락한다. 피의사실 보도는 언론 자유가 아니다. 언론의 자유로 위장한 천박한 선정주의·상업주의이며 언론과 검찰의 정치세력화를 서로 부추기는 음습한 욕망의 표현이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계기로 피의사실 보도를 금지함으로써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언론의 권력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삼각고리를 끊는 결단을 우리 사회가 하게 된다면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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