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진 전 주레바논 대사
독일형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에 따라
오래전부터 한진중공업 문제가
논의되고 처리되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험한 사태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크리스티안 불프 독일 연방대통령이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한 견해를 묻는 독일 유학생의 서한에 메시지를 보내와 화제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한국 국내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 세력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회문제와 관련하여 외국, 그것도 주요 선진국 대통령이 이를 노동자 인권 문제로 보는 메시지를 전달해온 것에 대해, 외교적으로 섣부르고 내정간섭적 행동이 아닌가 예단하고 떨떠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불프 대통령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독일의 대표적 우파정당인 기민당(CDU) 출신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은 필자의 과거 독일 근무 경험으로 볼 때,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
연방국가이자 내각책임제 국가인 독일에서 연방대통령은 정치적 실권은 없으나, 국가·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그의 일상 업무 중 하나는 국민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고 또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검증된 독일적 가치를 국내적으로 심화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이를 전파하는 것이다. 시장경제 국가에서 기업이 경영상의 문제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는 게 잘못된 일이 아니지 않으냐고 흔히 생각되는 마당에 고지식(?)하게 전파하려는 그 독일적 가치라는 게 무엇인가?
우리에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지만, 그건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뒤 서독이 1949년 채택한 한시적 헌법인 기본법(basic law)은 새로 창건되는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지향할 이념 중 하나가 역시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인 사회국가(social state)임을 분명히 하였는데, 이는 사회 평화를 위해 국가에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배려하는 책무를 부과한다는 것으로, 경제 모델로서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여기에서 연유되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경제라는 점에서 당시 소련, 동독 등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채택한 계획경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며, 1930년대 대공황 사태에 직면해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의해 실행된 수정자본주의가 나오기 전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와도 구별된다. 또 중국이 개혁·개방 이래 표방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socialistic market economy)와는 중국의 경제체제가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공산당이 주도하는 제한적 시장경제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개인이나 기업 등 민간 경제주체들에 소비·투자를 자유롭게 할 권리, 자유롭게 직업·업종을 선택할 권리 등을 보장하는 등 기본적으로는 시장경제 골격을 유지하되, 국가로 하여금 사회 평화를 위해 기업들의 독과점 금지 등 공정거래 감시,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 노동자들의 기업 경영참여 보장, 누진세율 등을 통한 소득 재분배, 노동자 재산형성 지원 등을 실행함으로써 시장경제가 지속가능하도록 근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보완·보정하는 데 핵심 의미가 있다.
얼핏 생각하면,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평등 지향적인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계통 정파에 의해 주도됐을 법도 한데, 사실은 우파세력에 의해 주도되어 그 토대가 마련되었다. 아데나워 초대 서독 총리 등 나치에 저항하거나 비협조적이었던 개신교 및 가톨릭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창당한 대표적 중도우파 정당인 기민당 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나라가 분단되고 경제 현실이 참담한 상황에서 기민당은 비스마르크 시대의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국가사회주의가 변형된 형태의 나치 시대의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 마르크스·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과 실제 등 독일이 근현대사에서 겪은 여러 경제·사회사적 경험들과 더불어 동유럽 공산국가들과 지리적으로 가장 전방에서 대치하는 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해, 1947년 뒤셀도르프 전당대회에서 서독의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로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강령의 하나로 채택하였다. 대표적 중도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SPD) 역시 이를 지지해 1949년에 헌법제정회의에서 채택된 서독 기본법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명문화하였는 바, 이후 아데나워 총리와 에르하르트 경제장관 아래에서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었고, 좌우 진영 간의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그 체제가 심화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사회 평화 지향적인 경제모델로서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 등 유럽 여타 국가들에도 파급되었고, 1990년 통독 이후 임시 헌법이었던 기본법이 영구 헌법이 됨에 따라 사회적 시장경제는 옛 동독 지역에도 확장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영광의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대처 영국 총리가 광산 폐쇄 등 단호한 정책으로 1980년대에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하게 되면서, 이와 비교되어 서독의 경제모델은 노동시장의 경직성, 지나친 사회보장 등으로 인한 성장률 둔화, 실업률 증대를 가져오는 대표적으로 비생산적인 경제모델인 것처럼 조롱을 받기도 했다. 독일 경제모델에 대한 외부 세계의 회의적 시각은 1990년 이후 독일이 통독 후유증을 앓게 되면서, 그리고 영·미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팽배함에 따라 계속되었고, ‘독일병’이란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이러던 것이 2008년 시작된 세계적 재정위기 상황 이후, 독일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 강한 산업 생산력,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모범생이 되면서 독일 경제모델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세계적 재정위기 상황에서 독일의 기업인들과 정치인, 노동자 대표들은 머리를 맞대고, 다른 나라 같으면 일괄적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고용을 계속하는 대신, 이로 인한 비용 문제는 정부의 보조금 지급으로 해결하는 식으로 사회적 시장경제의 정신을 실천하였다. 현재 독일의 실업률은 2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독일은 남유럽 국가들의 과도한 국가 부채로 인한 유로 통화권(유로존) 전체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깐깐하지만 믿음직한 형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 헌법 119조도 사회적 시장경제와 비슷한 정신을 선언하고 있지만, 이를 구현할 구체적인 법적 제도, 실천적 행동은 아직 충분히 정착되지 않아 안타깝다. 독일형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에 따라 오래전부터 한진중공업 문제가 논의되고 처리되었다면, 결코 오늘날과 같은 험한 사태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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