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02 19:42
수정 : 2011.09.02 19:42
9월2일치 1면 ‘“내 임금 인상말라” 서명받는 경비원들’ 을 읽고
김병현 미국 공인회계사
“안녕하세요.” 택배를 찾기 위해 경비실에 들어서는 나를 서글서글한 인상의 웃는 낯빛으로 경비 아저씨가 반겨줍니다. 경비실에는 이미 택배가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호수를 말해드리니 택배 더미 사이에서 나에게 온 택배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때 밖에서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울립니다. 빵빵. 방문 차량이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차단기 앞에 서 있습니다. 차량과 경비실의 전면 통유리 사이는 불과 1~2m 남짓. 투명한 유리이니 운전자는 경비 아저씨가 뭘 하고 계신지 뻔히 보았을 것입니다. 경비 아저씨는 나에게 미안하다 하시더니 얼른 주차장 관리대장을 들고 뛰어나가십니다. 운전자는 ‘감히 나를 기다리게 했다’는 사실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자신보다 연배가 한참 위로 보이는 경비 아저씨를 하대합니다. 뭔가 서글픈 모습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경비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경비 아저씨들의 업무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본래 업무인 경비에서부터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를 무단주차 차량 스티커 발부와 그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운전자와의 실랑이, 아침에 말끔하게 정리해놓기 무섭게 저녁이면 다시 엉망이 되어버리는 분리수거함 재분리 작업, 경비실 한쪽에서 도시락을 드시다가도 새벽에 잠에 취해 조시다가도 누군가 불쑥 택배를 찾으러 오면 몸을 일으켜야만 하는 택배 관리, 건물 내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 하는 일, 거기다가 이 모든 것들이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못할 때 들어오는 항의를 받아들여야 하는 일.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는 노무 관련 전문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냥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의 건전하고 보편적인 시각으로만 따져보았을 때도 분명 뭔가 잘못된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거대 자본에 공생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맞습니다. 같이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떤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조금 편하고 깔끔하다고 해서 재래시장보다는 대기업 마트에 길들여지지 않으셨습니까? 프랜차이즈 배달 음식이 아니면 주문하는 것이 꺼려지지 않으십니까? 커피 한잔에 원가의 수십배에 달하는 돈을 망설임 없이 지불하면서, 입주민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경비 아저씨의 법정 최저임금 지급을 위해 늘어나는 관리비 1만~2만원이 아깝다고 생각되십니까? 공생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해서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우리 작은 것부터 해나갑시다. 공동체는 한 사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공동체 안에서 나름의 역할이 있습니다. 결국 각자의 행동이 모여 공동체의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 공생 문화를 만들어봅시다. 아파트 값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의 10분의 1이라도 경비 아저씨를 포함한 내 주변의 이웃들을 돌아보는 데 투자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 앞으로 이런 창피한 기사 보이게 하지 맙시다. 우리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우리 사회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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