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8.31 19:25 수정 : 2011.08.31 19:25

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된 박아무개씨 등 네 명이 “대체복무를 통한 양심 실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병역법 88조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낸 신청을 받아들여 춘천지법이 제기한 위헌심판 제청 사건에 재판관들이 7(합헌) 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2004년 8월 같은 조항에 대해 재판관 9명 중 7(합헌) 대 2(위헌) 의견으로 “양심의 자유가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기는 하지만 국가안보라는 대단히 중요한 공익을 저해할 수 있는 무리한 입법적 실험(대체복무제)을 요구할 수는 없다”며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세계적으로 양심적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40여개에 이르지만, 한국처럼 병역거부자를 철저하게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병역거부 때문에 구속되어 복역하는 사람은 전세계에 걸쳐 200~3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1950년 이후 한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1만6000여명이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되었고, 2004년 이후 7년 동안 5000여명의 병역거부자가 구속되었으며, 2011년 4월 시점에서 900여명이 복역중이다.

병역거부자들의 논리는 수미일관되어 있다. 인간을 살상할 목적으로 총칼을 들 수 없다는 것이다. 병역을 면제해 달라는 게 아니라, 병역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입법을 요구한다. 군복무에 준하는 사회적 의무를 충족시키겠다는 것이다. 군대 대신 간병인, 산림관리원, 교통안전요원, 호스피스 같은 분야에서 군복무를 대신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국방부나 헌재는 가짜 병역거부자가 양산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병역면제를 위한 각종 편법과 탈법, 위법이 횡행하는 실정이고 보면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국가안보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악질적인 사이비 병역거부자 때문에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고 적잖은 범법자를 나라가 만들어내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재벌 2세 등과 같은 특권층 병역면제 비율이 매우 높은 상황을 방치한 채 양심적인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으로 몰아넣는 일은 더욱 자연스럽지 않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 4월 제시한 의견서는 음미할 만하다. “양심적 병역거부 때문에 유죄선고를 내리는 것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 18조 1항이 정한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위반된다. 자신의 양심·신앙과 조화되지 않는다면 누구든 군복무 면제를 요청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군복무 대신 징벌적이지 않은 사회봉사 형태의 대체복무를 부과할 수 있다.”

분단으로 인한 남북한 대치상황이 지속되고, 남북대립이 격화하는 시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가 불거지는 현상이 못내 안타깝다. 그러나 21세기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성공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일원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성숙해진 대한민국과 국민이 아닌가. 이제는 국가가 국민을 믿고 새로운 정책을 실행해도 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