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8.24 19:52 수정 : 2011.08.24 19:54

소금꽃 그림 그리는 강정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들과 해군기지반대대책위 회원들이 지난 23일 오후 강정마을회관 앞에서 10m짜리 대형 소금꽃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은 한진중공업 투쟁 현장에 보내질 예정이다. 해군기지반대대책위 미디어팀 고승민씨 제공

4차 ‘희망의 버스’ 릴레이 기고 ② 조유리·연세대 1학년

“즐겁게! 의연하게! 담대하게!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제 핸드폰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웬만한 여배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유명한 여인이 된 김진숙씨의 손글씨로 만든 스티커입니다. 지난 2차 희망버스 때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분들이 참가자들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가장 일상적인 물품인 핸드폰에 붙여놓은 이유는 그것을 만지거나 바라볼 때마다 희망버스에 참가했던 순간을 잊지 않고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가족대책위 분들도 내심 우리가 그래주길 바라면서 선물하신 것이겠지요?

1차 희망버스를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던 제가 용기 내어 2차 희망버스를 타던 날, 막상 버스에 오르니 복잡한 기분이 들더군요. 무엇보다 고민이 되었던 것은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라는 의구심이었습니다. 실제로 도움도 못 주면서, 정의로운 대학생으로 보이고 싶어서 ‘허세’만 부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부산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지만, 그 긴 시간 동안에도 머릿속의 복잡한 고민들은 차마 다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부산에 도착한 뒤 곧장 영도조선소로 향하는 무리에 합류했습니다. 영도대교를 지나고, “이제 얼마 안 남았다!”며 옆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던 순간에 갑자기 앞쪽의 사람들이 멈추어 섰습니다. 길이 막혔다고 했습니다. 수없이 상상했던 조선소, 크레인의 모습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습니다. 꼬박 하루가 걸려 부산까지 가서 하고자 했던 일은 그저 김진숙씨 얼굴이나 한번 보고 손 한번 흔들어 보는 일이었는데, 우리가 마주서야 했던 현실은 엄청나게 많은 전투경찰과 차벽, 최루액과 물대포였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미지의 물체로 남아버린 85호 크레인. 그 크레인의 의미가 성큼 다가온 것은 그 이후 다른 기회를 통해서였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때, ‘대학생 반(反)신자유주의 희망 선봉대’의 일원으로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했습니다. 희망버스가 오지 않는 날의 영도는 경찰의 ‘점령’에서 벗어나 있더군요.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과 폭력은 변함이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시커먼 방패가 없었던 그날, 마침내 도로 하나를 건너 우뚝 선 85호 크레인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신 김진숙씨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김진숙씨가 그렇게 지키고자 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크레인의 중간에서 거꾸로 김진숙씨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만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손을 뻗어 흔들며, 그분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곳까지 오게 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 순간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이렇게 손을 흔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구나. 이제 서울에 돌아가서도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진 나 자신을 위해서.

희망버스 때문에 영도 주민들이 겪은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접하고서 마음이 불편하셨던 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아픈 한구석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으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새끼발가락 하나가 아프면 온몸의 촉각이 곤두서는 것처럼요. 저는 그 ‘불편함’이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나와는 상관없다고 되뇌어 봐도 결국 우리는 한 땅 위에 서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느끼면서 살아가라고, 너희들은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제게 말씀하시던 분이 계셨습니다. 저를 생각해 주시는 그분의 따뜻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면 저는 차라리 잘 살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못 본 체한다고 안 보이는 것이라면 그렇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다음에는 분명 더 큰 불편함으로 다시 저를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불편함을 오늘 또 덮어버리고 계실 많은 분들의 마음에 더 큰 불편함이 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불편함을 ‘진짜’ 해결하는 길에 동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8월27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 4차 희망의 버스에서 만나요.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