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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22 19:11 수정 : 2011.08.22 19:11

4차 ‘희망의 버스’ 릴레이 기고 ① 송경동·시인

스무살 초반이었다. 충남 서산 현대중공업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코팅장갑 2개를 끼고 일해도 오후 4시께면 손가락 끝들이 다 해졌다. 종일 관 속에서 용접을 하다 나오면 코 주변이 시커멨고 숨쉬기가 곤란했다. 용접 부위 엑스레이를 찍을 때면 내 속도 한번만 찍어봐주면 했다. 저녁이면 내복 바람으로 나와 공중전화 박스 앞에 길게 줄 서 있던 가난한 사람들. 한푼이라도 더 벌고 싶어 잔업을, 철야를 시켜달라고 조르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서울로 왔다. 갈 곳이 없어 일용잡부 숙소에서 촛불을 켜두고 책을 봤다. 지하철공사장 함바 숙소에서 먹고 자고 했다. 콘크리트 뼈대만 올라간 주택공사장 지하에 스티로폼을 깔고 잤다. 버스를 타면 손톱 밑에 시커먼 기름때 쇳가루가 부끄러워 손잡이를 잡지 못했다. 눈물도 많이 흘렸고, 외롭기도 많이 했다.

사람들이 묻는다. 왜 한진중공업 김진숙과 정리해고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느냐고. 그가 나였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였기 때문이다. 그의 피눈물이 나의, 우리의 피눈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가 살아온 서글픈 어제였고, 뼈아픈 오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외로운 사람들, 아픈 사람들, 누군가의 손내밂이 절실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분노로 그 아픔으로 4차 희망의 버스가 향하는 곳을 서울로 제안했다. 오늘도 이죽거리며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김진숙을 둘러싸고 있는 총체적인 용역 깡패들의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김진숙을 둘러싸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장들의 담장을 넘기 위해, 94개 중대를 보내 한진중공업을 지키던 경찰청장을 찾아, ‘희망버스는 훼방버스’라며 조남호를 두둔하는 청와대를 향해, 재벌회장은 절대 국회 청문회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로비에 들어간 전경련과 경총을 향해, 사람들이 목숨을 걸거나 죽어나가서 문제가 되면 그때야 나서서 정리해고·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으니 희망퇴직이나 받으라는 거간꾼들의 무지를 넘기 위해 4차 희망의 버스는 이 모든 반사회적 외부세력들이 모여서 떵떵거리며 사는 서울로 향한다. 김진숙을 내려올 수 있게 하라고, 그를 내려올 수 있게 우리가 더 큰 힘으로 모이자고 서울로 향한다.

3년 동안 수주를 모두 수비크조선소로 돌리고 3000명을 자른 부도덕한 기업인, 온 사회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로 들썩일 때 오히려 해외로 도피해 오리무중이던 반사회적 기업인 조남호를 처벌하라고. 그런 기업인들로 가득 찬 이 사회를 조금은 더 투명하게 만들자고, 서울로 향한다.

1·2·3차에 함께했던 지역 희망의 버스들은 벌써부터 부릉부릉 채비중이라고 한다. 기름을 충분히 넣고, 엔진을 점검하고, 다시 신나는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고 한다. 교수·학술, 의료, 법조, 여성, 시민사회, 청년·학생, 문화·예술, 인권, 평화, 종교, 민중운동 등 각 사회 부문도 결정적 소풍을 앞두고 맘이 부풀고 있다. 먹을거리도 준비하고, 하늘 보고 잘 준비도 하고, 사람들과 나눌 재미있는 거리들도 마련한다고 한다.

2011년 8월27일, 이 여행은 또 한번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구하는 일임을 아는 모든 이들의, 모든 이들을 위한 자리가 될 것이다.

그날 우리는 다시 서울 광화문광장을 해방과 연대와 신명의 광장으로 열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크레인이 되어, 하나의 물러설 수 없는 꿈이 되어, 더이상은 어떤 이도 함부로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비정규직으로 설움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전 국민적, 전 사회적 동의를 획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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