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8.22 19:10 수정 : 2011.08.22 19:10

김지수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서울시교육청의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여 서울시장이 발의한 주민투표가 여야 정치권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보수단체 및 여당과 ‘나쁜 투표 안 하기 운동’을 펼치는 진보단체 및 야당의 한판 승부가 어떻게 될지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필자는 투표의 실질 내용을 검토하여 찬반을 가르기보다는, 투표방법 및 절차에 관한 법철학적 단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언어 및 법률 논리로 따지면,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투표권 행사 방법이다. 건전한 민주사회의 여론수렴 과정의 하나로 정착한 선거가 정상적으로 공정히 치러진다면, 물론 투표에 적극 참여해서 각자의 의견을 표시하고 다수결에 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용과 절차·방법상 중대한 흠이 있다고 의심할 만한 경우라면, 때로는 투표를 거부하는 의사 표시도 정당한 투표다. 법철학상으로는 나쁜 정치에 대한 시민 불복종이나 악법에 대한 저항권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찬반이 애매해 빠지는 소극적 기권과는 다른 적극적 거부권이라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문명국에서는 극악무도한 범죄자한테도 심문에 대해서 답변하지 않는 답변 방법을 묵비권으로 인정한다.

일찍이 맹자는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내 말이 말 같지도 않냐? 대꾸도 안 하게?”라는 볼멘 상황을 가끔 겪는다. 그래서 맹자는 제 깜냥에 잘해준다고 하는데도 상대방이 싫어하고 피하거나 거부하면, 상대방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성의를 반성하라고 했다.

또 정책의 일관성과 형평성에서도 여당은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다. 전에 해군항 건설과 영리병원 유치 문제로 제주지사 소환 주민투표를 시행할 때, 투표불참을 적극 지지한 것은 누구인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물속에 모래성 쌓기가 될지도 모르는 4대강 사업을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여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요구했을 때, 콧방귀도 안 뀐 채 무시하고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한 장본인은 또 누구인가? 여당에는 양심과 지성 있는 사람이 그렇게도 없을까? 당내 침묵은 강요하면서 시민의 침묵은 참지 못하는 걸까?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독선과 아집은 내가 아니면 국가와 민족을 구할 자가 없다며 군사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투표를 강요하면 ‘자치’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도 아니다. 서울시민의 비폭력 불복종의 저항이 얼마나 거셀지, 이번 주민투표를 지켜볼 일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