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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17 19:41 수정 : 2011.08.17 19:41

익명의 장애인

저는 4년 전 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 이 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집밖을 한발짝만 나가려 해도 턱이 있어서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인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려 해도 턱이 있어 누군가가 휠체어를 들어 옮겨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보도블록이 패어 있거나 울퉁불퉁하여 언제 휠체어가 뒤집힐지 몰라 불안해서 혼자서는 다닐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꼭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굴욕적인지 아시는지요? 그러다보니 생활 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즈음은 그래도 관공서마다 경사로를 만들어 휠체어도 드나들 수 있도록 시설을 고치고는 있습니다만 실상을 알고 보면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사로의 기울기가 너무 급해 휠체어가 뒤집힐 수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 결국은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주민센터도 앞에 턱이 있고 계단이 있어서 저는 늘 직원을 전화로 불러내 도로에서 업무를 보곤 했습니다. 얼마 전에 휠체어 경사로가 생겼지만 너무 위험하게 되어 있어서 혼자서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의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동네의 파출소도 마찬가지 이유로 경사로가 있긴 해도 이용할 수 없고, 심지어 동네에 새로 들어선 장애인복지관마저 장애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인데도 휠체어가 드나들기엔 각 방의 문이 너무 좁아 애를 먹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장애인이 살아가기엔 너무 힘이 드는 현실이지만, 저는 사고 후 4년 만에 처음으로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의 그 어떤 숙박시설도 장애인을 위한 전용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제관광도시라고 늘 홍보하는 제주도에도 장애인 전용 객실이 있는 숙박시설이 없었습니다. 올레길에 장애인 휠체어가 다닐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는데, 그러면 뭐합니까? 관광지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고 장애인을 위한 숙박시설이 없는데 어떻게 이용을 하라는 겁니까? 보여주기식으로 떠벌리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국내여행을 포기하고 일본여행을 했습니다. 일본은 특급호텔이 아니어도 많은 숙박시설이 장애인 전용실을 갖추고 화장실, 샤워시설, 세면대 등등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써놓았더군요. 10년이 넘은 호텔인데도 이 모든 시설이 되어 있었습니다. 관광지마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고, 건물 안에는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나 리프트가 있고 직원들은 장애인을 최우선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만큼 관광하기에 불편이 없다는 얘기지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한국에는 장애인이 얼마 없는 줄로 안다고 합니다. 보이지가 않으니까요. 없는 것이 아니라 밖에 나다니기에 그만큼 불편하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이 집에만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일본에서 작은 식당을 갔는데 개인이 운영하는 그 식당에도 장애인 화장실이 있더군요.

내국인이 국내여행을 할 수 없어서 외국으로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하루빨리 문화체육관광부나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을 위한 관광시설 정책을 새롭게 마련해 장애인들도 마음껏 여행하며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장애인들도 여행할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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