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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15 19:41 수정 : 2011.08.15 19:41

강영 소설가·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나는 늦깎이, 뭐든지 늦었다. 늦은 것 중에서 깨달음이 가장 문제다. 깨달음이 늦으니 매사가 섣부르다. 요 며칠간 이 때문에 희열과 고통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두어 주 전에 지방 일간지에 칼럼을 썼다.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냈다. 평소엔 그곳에 군기지는 안 된다는 쪽이었다. 강정에 군기지라니! 칼럼을 쓰기 직전 객관성을 확보한다고 남편과 의논했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고향인 목포에 해군기지가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논거를 들이대며 보호논리를 폈다. 나는 목포에 지금까지 아무 피해가 없다는 데에 솔깃해져서 강정마을 군기지 건설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는 쪽으로 칼럼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무책임한 짓이었다.

내 원고가 지면에 그대로 실리고 나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짜증을 처치하지 못하면 일상은 아주 쉽게 합병증을 일으킨다. 정직하게 의견을 말한 죄 없는 남편에게 시비를 걸고 애들한테도 버럭 화를 냈다. 가족 전부가 짜증합병증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옳지 않은 마음과 행동 때문이라는 걸 몰랐다.

내가 합병증의 원인을 명징하게 깨달은 건 2차·3차 희망버스 문화제에 참석하면서였다. 특히 2차 때의 깨달음인데 ‘내가 행복하다’는 그 명확한 사실이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외치면서 많이 울었다. 3차 때처럼 일부러 숨죽여 울 필요도 없었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가 내 울음과 외침을 숨겨 품어주었기 때문이다. 살다 살다 그렇게 끈질기게 내리는 비는 생전 처음이다. 다행히 우산을 챙겨갔기에 그것에 의지해서 아스팔트에 앉아 젖으며 밤을 새웠다. 그런데도 행복하던 거였다.

1차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간다고 할 때만 해도 귓등으로 흘리던 내가 2차에서나마 귀담아 들을 수 있었고 드디어 참여할 수 있었던 건 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과 내 작은 움직임이 그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그 놀라운 사실이었다. 내가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니. 신났다! 내가 살려야 할 사람이 누군가 자세히 알아봤더니 알아볼수록 귀한 사람이라. 자신만이 잘살아야겠다고 난리법석이 난 이 판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허술한 보따리에 속옷 싸듯 싸서 언제든지 동료를 살릴 수만 있다면 ‘던져뿌리께’ 하며 쇳덩어리 탑에 냉큼 올라간 사람이었다. 이 무슨 천연기념물도 아니고. 그 사람이 쇳덩어리에서 방실방실 웃는 걸 사진으로나마 보자면 진짜 행복하더라. 행복해서, 행복해서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울고 있다.

3차 때는 불행히도 비가 오지 않아 나는 숨죽여, 소리 죽여 울 수밖에 없었다. 평소 존경해온 흰옷을 즐겨 입는 분의 말씀을 좀더 가까이에서 듣기 위해 맨 앞에 앉았기 때문에 혹시 내 울음소리가 연설을 방해할까 걱정되기도 해서 손바닥으로 콧구멍과 자발없는 주둥이를 틀어막고 울었다. 울음은 천연기념물 사람의 육성이 마이크를 통해서 나오는 때가 절정이었겠지? 사람은 못 내려오고 목소리만 휴대전화에 담겨 내려온 거였다. “돈에 대한 집착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모든 집착을 다 버린 사람을 절대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오, 아름다운 시여! 위대한 절창! 나 또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마음과 몸을 내주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대자! 내 마음의 결의가 저절로 똘똘했다.

자, 섣부른 판단을 멀리 던져서 고통을 단호히 벗자. 강정에 군기지가 들어서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그것이 자국 보호라는 교묘한 은폐물 뒤에 숨은 강대국의 패권논리라면 우리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거절하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군기지라고 작은 건물 하나라도 들어서면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이제 그 건물은 차곡차곡 아름다운 제주를 먹어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저 평택에서, 저 용산에서 이미 너무도 충분히 보았고 알았고 당했다. 더는 아름다운 이 땅에 군기지는 필요 없다. 내 아직 군기지가 전쟁을 막았다는 애기를 들은 적도 없고, 군기지가 사람과 자연을 보호한 예를 보지 못했다. 군기지는 군기지를 부른다. 전쟁을 부를 뿐이다.

나는 단호히 깨닫는다. 사람은 올바를 때 행복하다. 올바를 때 위대하다. 아직도 내 말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을 위해 외친다. 봐라, 김진숙과 조남호, 두 사람 중에 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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