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서울대 논술은 오히려 대학 자율성에 역행 |
2005학년도 특기자 전형에서 특목고 출신 합격자의 비율은 이미 33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2008학년도 특기자 전형이 서울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특목고 출신 합격자 수는 지금의 2배로 늘어날 것이다.
서울대가 발표한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에 대하여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문제를 제기하자,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교협의 성명서는 먼저 일부 정치인의 서울대에 대한 폭언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뒤, 아직 연구·검토 중인 통합교과형 논술을 놓고 사교육을 부추기고 공교육을 망친다는 비판은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어 정부는 부당한 대학 자율성 침해를 중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대 교협의 상황 규정은 타당한 것인가? 냉철한 눈으로 교협의 성명이 놓치고 있는 사안의 본질로 되돌아가 보자.
우선 지적할 것은 통합교과형 논술의 도입은 오히려 대학의 자율성 향상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통합교과형 논술이 공교육의 창의성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이 등급제로 전환한 수능성적과 고교간 학력차를 고려하지 않은 내신성적이 갖는 변별력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임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수능과 내신 등급으로 구분되지 않는 지원자들을 통합교과형 논술 성적으로 다시 일렬로 줄 세우고 점수에 따라 기계적으로 당락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동일한 점수를 얻은 학생이라면 집안 형편이 어려워 부모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 학생의 성취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대학은 이 학생의 지적 잠재력을 높이 사서 이 학생을 합격시킬 수 있다. 이런 판단이야말로 대학의 자율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점수차로만 당락을 결정하는 상황에서는 대학의 자율적이며 전문적인 판단이 개입할 틈이 없다. 서울대가 통합교과형 논술을 도입하지 않고는 입시 부정과 공정성 시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상당수 국민들은 납득할 것이다. 상호 불신을 전제로 한 점수만이 정의라는 사회적 통념과 서울대 스스로 맞서지 않는 한 대학 선발의 자율이란 요원하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서울대는 특수목적고의 상급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8학년도의 입시안은 서울대는 부정하고 있지만 특목고에 유리하도록 짜여 있다는 것은 그 안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본 자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2005학년도 특기자 전형에서 특목고 출신 합격자의 비율은 이미 33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2008학년도 특기자 전형이 서울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특목고 출신 합격자 수는 지금의 2배로 늘어날 것이다. 3년 동안 함께 공부한 학생들이 서울대 특정 학과에 고스란히 진학하여 다시 4년을 함께 보낸다면 이들 간에 서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학습집단을 구성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2003년 6월에 있었던 미국 미시간 법대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결은 시사하는 바 크다. 미시간 법대가 인종을 중요한 선발 준거로 사용함에 따라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낙방한 지원자가 차별을 금지한 미국 수정헌법을 내세워 제기한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은 학습집단의 구성원들을 다양화할 때 얻을 수 있는 교육적 이점을 인정하여 미시간 법대의 손을 들어준다. 이는 학습집단 구성원의 다양성도 그것이 갖는 교육적 효과에 비추어 대학의 선발 준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는 수능과 내신의 약한 변별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새로운 선발 준거들을 찾아내고 개발해야 할 시점에서 입시 부정과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차선으로 시행해 온 점수 위주 선발로 퇴행하고 있다. 서울대가 입시 선발에서 진정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대안적 준거를 찾고 개발하는 데 집단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본다.
박부권/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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