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10 19:23
수정 : 2011.08.10 19:23
장기요양보험 담당 직원들은 왜 폭력에 시달려야 하나
송상호 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 정책기획실장
지난달 27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연근무 장관 1호’가 되었단다. 아침 8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한다고 한다. 공공부문도 똑같이 바꾸어야 한다고도 했다. 오후 여가시간이 많아져 부진한 내수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백성을 위한 선정 대신 사치와 낭비로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짧은 생을 비참하게 마감한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앙투아네트는 굶주린 국민들의 울부짖음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던가.
희망을 포기한 넘쳐나는 청년실업자들,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 몇백원에 온몸을 던지는 노동자들,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도 지하 전세방에서 탈출할 수 없는 비정규직…. 이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소수가 아닌 다수가 되었다. 현재의 경제 현실이,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를 조금이나마 인식했어도 박 장관은 이런 발언을 했을까. 박 장관의 발상은 엘리트 코스만을 밟은 ‘대한민국 1%’다운 이야기다. 얼마나 1%다운지 정부산하기관 노동자의 실태를 들어보자.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보험 담당 직원이 수급신청자의 요청으로 인정조사(수급 적정 여부를 조사하는 방문조사 업무)를 위해 신청자의 집을 방문했다가 보호자들로부터 흉기로 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남자 직원은 멍키스패너와 주먹으로 두드려 맞고, 여자 직원은 머리채를 잡힌 채 옥탑방에 끌려갔다. 3등급에서 탈락하면 월평균 74만원의 수입이 끊어지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3등급을 받으려 했던 것이다. 이들은 네달 사이에 4번을 반복하여 재신청했다. 인력 부족으로 통상 한명의 직원이 나가지만 여자 직원이 불안을 감지하고 남자 직원에게 부탁하여 두명이 나갔는데도 발생한 사건이다. 물론 이러한 피해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30살 미만의 여직원이 대부분인 장기요양보험 요양직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 조사를 나가야 하며, 유사한 폭력은 끊이질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사태가 구조적으로 방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시행된 장기요양보험은 제도설계 때 인력산정을 하면서 인정자 수 16만명을 예상하고 인정조사 2인1조로 하루 4건 처리를 기준으로 했다. 하지만 2010년 인정자 수는 31만명을 넘어 2배나 초과되었고, 요양직 1인당 관리 인원 역시 76명에서 199명으로 증가했다. 일본이 35명이니 6배에 이른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공단의 수차례 요구에도 제도 출범 때의 2496명에서 단 1명의 인력도 증원하지 않았다. 그사이 요양직들은 피폐해지고 황폐해졌다. 2009년 실태조사에서 170명의 임신한 요양직 여직원 중 10%가 넘는 18명이 과로로 유산했다. 직원 1인의 인정조사는 수급자의 강한 불만과 항의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커다란 폭력으로 이어진다. 끝도 없는 업무량은 적정한 질의 서비스조차 담보하기 어렵게 만든다. 실례로 2인 인정조사 때보다 1인 인정조사 때 재신청건은 훨씬 높다. 2인 조사는 수급자의 신뢰 제고와 함께 불필요한 행정인력의 낭비를 크게 줄이는 것이다. 총 인정조사 중 재신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상회한다. 요양직 여성들은 일상적인 휴가조차 내지 못한다. 하루 휴가 뒤에 밀려 있을 업무를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제도 정착을 위해 퇴근시간도 없이 휴일까지 반납하는 신규 직원이 손에 쥐는 임금은 월 150만원 남짓이다.
박재완 장관은 자신의 말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야 한다. 파김치가 되도록 일해도 퇴근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정부산하기관 종사자들의 정확한 실태부터 파악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땅의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하루하루를 버거워하는지 진정성 있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박 장관의 유연근무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선놀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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