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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8 17:01 수정 : 2005.07.08 17:01

평택미군기지 확장은 잘못된 일이다.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헌법적 책무를 어겼다. 결국 국민 스스로 믿어야 할 때다.

옆자리 내 또래 노인의 눈이 양손으로 가만히 쥔 촛불 안에 비쳐 아른거리더니 점점 커진다. 눈동자 전체가 촛불이 된다. 일제 말 일본군이 확장한 침략기지에 떠밀려 내쫓긴 어린 시절. 옛 대추리 마름집 논을 붙여먹으러 부모의 달구지에 실려 몇 리를 덜컹거렸다. 늘 일하면서도 배고프던 어린 시절, 한국전쟁, 미군기지 확장, 또 다시 추방, 청춘을 바쳐 짠물 막은 논, …. 늙고 병들어 의지할 곳이라곤 자식밖에 없다. 그렇지만 보태준 것 없어 어렵게 사는 자식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밭은 기침에 촛불이 흔들리고 노인의 눈도 희미해진다.

팽성 주민은 목숨인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 힘겨운 나날을 살고 있다. 지난 6월27일은 촛불문화 행사 300일째 날이었다. 그날 행사는 상경해 광화문에서 열었다. 참가자는 대부분 나이 일흔의 노인들이다. “단 한평도 줄 수 없다.” “이 땅에서 살다 이 땅에 묻히고 싶다.” “이 땅을 빼앗긴다면 죽어서 나가겠다.” 주민들의 절규이자 매일 매일 촛불행사가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이 일흔을 바라보는 나도 같은 마음이다.

못자리를 하고 모를 심는 것으로 시작되는 농민의 봄. 그러나 평택 팽성의 봄은 위태로웠다. 농민들은 지난해 가을 추수 이래 흙을 바라보는 마음이 예년과 달리 착잡하고 불안해 손에 일이 걸리지 않았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토지수용이 올해 말로 완료될 참이었다. 물건조사와 이의신청, 감정평가니 협의매수 단계니 하는 정부 절차에 감정만 상할대로 상했다. 그것들을 반대하고 거부할수록 막바지에 결국 감정도 없이 밀고 들어오게 될 강제수용이라는 이름의 장갑차가 가까워지는 듯했다.

주한미군은 한-미 상호방위조약를 근거로 주둔했다. 주둔군지휘협정(소파)에 의해 치외법권의 지위도 누려왔다. 그런데 이조차 뛰어넘는 한-미 관계가 지금 형성되고 있다. 바로 미국의 국외주둔 미군 재배치에 따른 변화다. 주한 용산 미8군과 한강 위쪽 미2사단이 신속기동군 성격을 가진 정밀타격대로 평택에 재배치된다. 전략적 유연성을 갖춰 동북아시아 어디라도 출격한다는 계획이다. 우리 군대는 미국의 지역군이 되고 만다. 주한미군 재배치는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현실화다. 이것이 우리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과 주한미군 총집결을 결단코 반대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은 과연 안전한가? 위쪽인 강화도 검단에서 아래쪽 제주 화순까지 서해안을 따라 패트리엇 미사일 부대 배치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2010년까지 2조4000억원어치를 사들인다고 한다. 여기서 심각한 일은 한반도가 미국의 대중국 군사전략을 위한 만만한 군사기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와 같은 그릇된 일에 희생되는 것은 우리의 삶과 생활이다. 당장 우리가 희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38만 평택 인구가 일곱 달을 먹는다는 평택쌀 생산지인 팽성 옥토 349만평이다. 미군기지 시설비와 이사비용에도 몇 조원을 대줘야 한다. 미국 군사안보 복합체의 배를 불려주는 것도 우리에게 강요되는 몫이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골백번을 생각해도 잘못된 일이다.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헌법적 책무를 어기고 있다.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 잘못으로 인해 희생당하고 있는 국민들 각자가 지금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야 할 때다. 스스로 믿어야 할 때다. 똑같은 자들 똑같은 권력이 싫고 염증이 난다고 하면서도 왜 아직 망설이는가. 7월10일 대추리에 와서 보라. 자신의 평화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믿고 싸우는 사람들의 행진에 동참하자.


문정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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