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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29 19:30 수정 : 2011.06.29 19:30

서진원 전북대 교수·문헌정보학

교육은 무엇일까. 플라톤의 <레푸블리카>(국가)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아데이만토스와의 대화에서 교육을 씨앗의 양육에 비유하고 있다. 식물의 씨는 그것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과 날씨의 환경이 중요하다. 충분한 영양분이 공급되는 환경에서는 그 씨앗은 훌륭한 나무로 성장할 것이다. 훌륭한 나무로 성장한다는 말은 그 나무의 성향을 충분히 발휘하며 자란다는 말이다. 그 나무가 아무리 훌륭하게 자란다 해도, 이를테면 감나무가 소나무가 된다든지 소나무가 감나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나무 씨앗은 소나무로서, 감나무 씨앗은 감나무로서 훌륭하게 자라게 하는 것이 교육의 할 일이다.

우리의 교육을 보자. 과연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의 목표는 거의 획일적으로 일류대학 인기학과 나와서 돈 많이 벌고 높은 지위와 권력을 누리는 전문가 직업으로 초점이 모아진다. 그 아이가 소나무씨인지 감나무씨인지는 처음부터 무시된다. 우리 사회의 교육의 혼란은 어느 정도는 여기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의 성향과 능력을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획일적인 기준으로 몰아가는 학교교육에서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개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상적인 교육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각 분야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인재들을 동등하게 인정하고 대우하는 사회적·제도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학교의 교과목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마치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제대로 정상적으로 잘 자라듯이 이 과목들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구분할 수 없다. 아이들의 다양한 개성이 어느 과목에서 더 잘 반응하는지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다. 더 잘 반응하는 과목이 그 아이에게는 중요한 과목일 뿐이다. 사교육을 잡겠다고 학교교육이 국·영·수 위주로 나아가는 것은 잘못이다. 정상적인 교육의 틀을 벗어나는 어떠한 정책도 결국은 학교교육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학교 공부는 독서가 아직도 중요한 채널이다. 독서는 물론 교양과 인격 함양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학교 공부와 관련해서 생각하면 독서가 지식의 습득과 사고력 향상에 중요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독서를 잘 할 수 있다면 학교 공부는 해결된다. 이 간단한 진리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무시되었다. 독서하는 습관, 독서하는 능력을 유치원, 초등학교에서부터 잘 키워준다면 그 아이는 교양과 인격 함양을 통해서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신장시키고 학교 공부도 자연히 잘 하게 된다. ‘자연히’라는 말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것을 말한다. 독서습관과 독서능력이 없는 아이는 학교와 부모가 아무리 강요하고 학원으로 내몰아도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이에게는 지옥이다.

학교 도서관은 최근 독서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교 도서관이 학교교육의 근본적 해결을 맡는 중요한 결정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정부의 정책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이들의 독서 이력을 기록하고 이것을 학교 성적과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는 생각은 치졸하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아이들을 치사하게 만들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독서의 흥미마저 잃어버리게 할 것이다. 독서교육에 충실하면 된다. 독서가 왜 필요한지를 느끼게 하고,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권을 읽어도 재미있게 읽고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독서교육이다.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여 독서 책 수 늘리기에 급급하고, 독서 대상 책도 아이의 개성은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정해지는 독서교육은 정상적 독서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독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든 몇권의 책을 읽든 아이들의 개성과 흥미가 독서에 스며들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지켜봐야 한다. 선생님도 같이 독서하고, 부모님도 같이 독서하면서 읽은 책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선생님과 부모님들에게 이런 여유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학교 도서관과 사서교사는 이러한 측면을 보완해주는 독서교육 환경의 필수 요소이다.

중요한 것은 강요하지 않는 것, 독서를 명령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독서 환경은 다양한 독서자료를 요구한다. 아이들의 개성과 능력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에 적합한 독서자료를 제공하고, 또한 아이들 스스로 자신에게 적합한 독서자료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사서교사의 정보활용 교육(information literacy instruction)이고, 독서교육이다.

일요일 오후 입시를 앞둔 아들 녀석은 지난밤 공부가 힘들었는지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책상에는 공부하던 책들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무심코 펼쳐져 있는 책들을 읽어본다.

백석, 이용악, 김남조, 안도현, 천상병의 아름다운 시들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들이다.

이런 시들을 즐겨 읽었던 지난날 내 학생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이런 시들을 요란한 형용사로 포장된 수능문제집에서가 아니라

아름답게 제본된 작은 시집들에서 읽었다. 그리고 이런 시들을 읽으면서

얼마나 내 마음이 따뜻해졌던가.

수험공부에 지쳐 일요일 오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자꾸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처럼 아름다운 시들을 수험공부라는 치열하고 살벌한 전쟁의 소재로 삼아서

이 아름다운 시들에서 고통과 절망감만을 맛보아야 하는 네가 너무 불쌍하구나.

미안하다 아들아!

이 아름다운 시들을 제대로 맛보는 것조차 우리는 방해하는구나.

정부가 지금 시행하려고 하는 독서교육 정책이 아이들의 독서를 방해하지나 않을까, 나는 그것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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