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7 19:22
수정 : 2011.06.27 19:22
정용진 건강사회를 위한 한약사회 회장
시사물을 즐겨보는 편이라 각 방송사의 ‘스페셜’이라는 이름이 붙은 프로그램에 대한 나름의 인상이 있다. 가장 비중있고 시사적인 분위기가 강한 소재를 다뤄온 곳이 <한국방송>(KBS)이라면 비교적 부담없고 가벼운 소재를 중심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방송해 온 게 <에스비에스>(SBS)인 듯싶다. 그에 반해 <문화방송>(MBC)은 휴머니즘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소재를 발굴하여 일반인들의 관심과 주목을 폭넓게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엠비시스페셜>이 불방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사실 <피디수첩>이 불방됐다고 하면 광우병 파동으로 법적 공방을 벌였던 일도 있으니 또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엠비시스페셜>이 불방조처를 당하다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엠비시스페셜> ‘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 편 불방과 관련한 여러 언론 보도를 보고 나서 먼저 드는 생각은 분노에 앞서 촌스럽다는 느낌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담당 국장은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밝혔는데, 도대체 누가 오해를 한단 말인가. 주어가 분명치 않으면 통 알 수 없는 일이다. 시청자들이 오해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대단히 불쾌한 발언일 수 있다. 또 모르겠다. 어느 정치인의 부인은 매일 백화점 가서 명품이나 사들이는 데 열중하고 있고 다른 정치인의 부인은 봉사활동에만 열심인 모습을 찍는 식으로 제작했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은 한 이 정도의 내용으로 시청자들이 정치인들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할 정도로 단순하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마 본인도 정작 그렇게는 생각 안 했을 듯하다.
정치 문제에 대한 방송의 중립성·공정성 논란을 온전히 피해갈 방법이 있을까? 모든 국회의원의 부인을 똑같은 분량으로 다룬다면 논란을 피해갈 수 있을까? 만약에 독신인 국회의원이 왜 부부간의 모습을 다뤄 독신에 대한 오해를 조장하느냐고 항의하거나, 여성 국회의원이 남편은 다루지 않느냐고 항의하면 뭐라고 할 건가? 2012년은 총선·대선이 동시에 열리는 해인데, 이런 식의 기준대로라면 문화방송은 아예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는 게 오해를 피하는 길 아닐까.
지금까지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을 쭉 지켜본 결과, 똑같이 낙하산 논란을 겪었지만 프로그램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문화방송 쪽이 훨씬 심해 보인다. 백번 양보해서 시사·보도 기능의 위축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할지라도 <나는 가수다>의 프로듀서 교체 등에서 보듯이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윗분들의 입김이 미치고 있는 현실은 못내 아쉽다. 문화방송은 그 나름대로 오랫동안 쌓아온 고유의 이미지가 있고 그 이미지는 경쟁이 심화되는 방송 시장에서는 큰 무형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몇달 뒤 종편 채널이 방송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기존 공중파 3곳에 종편 4곳까지 총 7개의 방송국이 비슷한 분위기의 시사·보도물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 더 넓게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박탈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문화방송의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나는 가수다>, <신입사원> 등의 참신한 기획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차에 <엠비시스페셜>이 ‘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 이야기를 다룬다는 예고편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훨씬 더 관심과 오해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공인들의 이야기를 신비감 대신 평범한 한 사람의 부단한 삶의 여정으로 구성해내는 문화방송의 기획력이 또다시 작품을 만들어내는가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금요일 저녁, 주말을 앞두고 모처럼 편안히 쉬는 시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로 가슴이 촉촉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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