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0 19:32
수정 : 2011.06.20 19:32
서해성 작가
대학 등록금 싸움은 공공영역에 대한 대중의 감수성을 불러일으켰다. 선거용 포퓰리즘으로 써먹고 곧 내버렸던 ‘반값 등록금’은 레임덕에 빠진 권력을 다시 반토막 내면서 거리를 부활시켰다. 서울 청계광장 들머리는 오늘도 학생들이 손에 들고 외치는 불빛으로 환하다. 권력의 의도된 망각이 스스로 촛불 공포를 되살려낸 셈이다. 이 불꽃이 내일을 밝히리라.
앞으로 이는 미래를 빼앗아 가버린 대출금 상환 거부나 자칫 끝내 ‘알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 팔자들의 일자리 확보 요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은 인자한 기부가 아니라 고용과 납세를 통해 이루어지는 게 마땅하다.
이러한 공공영역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더는 거스를 수 없는 물결로 굽이치다가 양대 선거 국면에서 일단 정점에 이를 터이다. 공적 의미에서 일, 돈(등록금·세금), 몸(건강보험과 진료), 집(공공주택), 물(항구적 공공화)은 하나다. 한국어에서 중요한 것은 얼굴에 붙은 눈·코·입·귀처럼 다 한 글자다. 오늘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말’이다. 풀어 말하면 종편(종합편성) 방송이다. 그중에서도 조·중·동·매 네쌍둥이 방송, 그중에서도 광고다. 네쌍둥이란 건 이들 미디어의 유전자 배열이 치열하게도 닮은 까닭이다.
종편의 탯줄 미디어법은 알다시피 이태 전 7월 국회 폭력과 날치기로 탄생했다. 절차적으로는 아직 온전히 태어났다고 하기 어려운데, 버젓이 올해 말이면 방송이 시작된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의무재송신(전체 가구 8할), 거의 자유로운 편성, 황금채널, 방송발전기금 나중에 돈 벌면 내기, 중간광고, 광고규제 완화. 일단 이 정도 혜택만 준다면 솔직히 누구나 방송사를 차릴 수 있다고 해도 어긋난 말이 아니다. 아직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장학금에 보험, 후원금까지 미리 들어주는 격이다. 게다가 방송사가 직접 광고영업까지 할 수 있도록 한껏 배려하고 있다.
오래도록 방송광고는 판매대행사(미디어렙, 현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 이뤄져왔다. 자본(광고주)과 방송 사이 영향력을 상호 차단하고, 광고비를 멋대로 올리는 걸 조절하고, 시사교양이나 다큐 같은 돈 안 되는 프로그램의 퇴조를 막거나 지역·중소방송사를 지원하는 것도 이러한 공적 장치가 있기에 가능했다. 믿기 어렵게도 4대 종편을 이 제도에서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조·중·동·매가 광고주를 을러대거나 때로 짜고 붙어도 좋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기층대중은 미디어 소비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고, 사회적·정치적 진실은 더 한층 은폐·왜곡을 피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대중은 쇼에 중독된 말 잘 듣는 원숭이로 전락한 채 거실 구석을 저마다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디어 폭력이다. 신문과 방송을 한손에 틀어쥔 미디어갱은 이렇게 출현하고 있다.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를 저지하고 방송과 광고의 공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미디어렙 법안 통과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임시국회 안에 일을 성사시켜내겠다는 계획이다. 취임하면서 저들을 굶게 하겠다던 언론노조 위원장은 ‘약속을 어기고’ 단식을 결행하고 있다. 두해 전 여름 미디어법도 그렇거니와 양식있는 국회의원들은 이 일에 책임지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총선과 대선을 최소한의 상식적 언론 환경에서 치르고자 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권을 국가의 공적 관리보다는 사유물로 착각하는 의도된 치매는 수구세력과 자본의 불치병이다. 역사에서는 언제든 대중만이 의사였다. 말과 진실의 공공영역은 한번 사유화되면 되찾아오기 어려운 법이다. 언론자유란 시민주권인 표현의 자유를 위임한 한 형태일 뿐이란 걸 새삼 알아야 한다. 이 사태의 심각성을 공유하지 못한 채 무지가 길어지면, 광고를 먹고 괴물로 자란 종편이 마침내 세상을 먹어치우리라. 일·돈·몸·집·물과 더불어 말을 지켜내기 위한 대중적 감수성과 참여가 실로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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