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0 19:28
수정 : 2011.06.20 19:28
안진걸 등록금넷 정책담당
이명박 대통령이 등록금 문제 해법을 서두르지 말라고 여당에 황당한 지침을 내리시더니, 이제는 아예 ‘반값 등록금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대학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와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다고 발뺌하면서, 반값 등록금을 불가능한 정책으로 치부해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비겁하고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자신의 선거운동본부에 ‘등록금 절반위원회’까지 설치·운영했었고, 한나라당이 수십 차례 공개적으로 발표한 중대한 공약이었으며, 그리고 현재 대다수 국민들이 폭발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반값 등록금 정책이 ‘안 되는 것’이라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등록금 문제는 한국 사회의 살인적인 교육비 부담 문제와 깊숙이 얽혀 있습니다. 즉, 출생에서 대학 졸업 때까지 무려 3억원 안팎의 엄청난 양육·교육비용이 드는 ‘살인적인 교육비 고통’이라는 맥락에서 등록금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 살인적인 교육비 고통 중에서도 대학 등록금 및 고등교육 비용이 가장 과중하기 때문에 최근에 반값 등록금 운동이 국민적 의제로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1년 등록금만 1000만원 안팎의 ‘미친 등록금’의 나라에서, 여타 교육·생활비용까지 하면 대학생 1인당 1년에 3000만원 안팎의 비용이 소요되는 과중한 교육비 부담의 나라에서 어느 국민이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고등교육비 지출 중 공적 부담과 사적 부담의 비율은 69.1% 대 30.9%입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반대로 사적 부담 비중이 79.3%(2007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나라 미친 등록금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고등교육과 관련된 비용을 철저히 개인에게 부담시켜 왔다는 것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다른 나라들처럼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1년 예산만 310조원이나 되는 대한민국에서 ‘대학 무상교육’도 아니고 ‘반값 등록금’도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 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정작 국민들이 그렇게도 하지 말라고, 백번을 양보해서 서두르지 말라고 호소했던 ‘부자감세’나 ‘4대강 사업’은 수십조원을 들여서 사람이 죽어나가도록 서두르더니, 정말 시급한 민생 문제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학의 자구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반값 등록금이, 또는 그에 근접한 정책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막연한 이유로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온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반면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에 나선 남경필 의원은 내년부터 반값에 가까운 등록금의 45%를 인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절절하게 주창하고 있는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에 꼭 부합하는 안은 아니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훨씬 못살던 20세기 초·중반에 유럽은 대학까지 무상교육, 무상의료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그 골격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최근 독일의 몇몇 주에서는 한 학기당 80만원밖에 안 하는 등록금을 폐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정말 소액에 불과한 그 등록금마저도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교육은 국가와 사회가 공적으로 책임지자며 폐지한 것입니다. 이제 고등교육을 철저히 학생·학부모의 책임과 부담에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고등교육 정책은 즉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교육정책에 대한 논쟁은 뒤로하고, 최소한 교육비만큼은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사회, 출생에서의 불평등은 어찌할 수 없다 해도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선만큼은 최대한 공정하게 보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참된 도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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