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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17 19:42 수정 : 2011.06.17 19:42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밤 대학본부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전창열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지금 국립 서울대학교에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이 학교 행정관 건물을 보름이 넘도록 점거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의 점거는 단순히 소수의 학생들이 행정관에 침입한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서울대 학생 다수의 지지와 참여 속에 지탱되고 있다. 서울대 본부 쪽과 일부 언론은 현재의 사태를 불법·폭력점거라 비난하고 있다. ‘비이성적’이라거나 ‘반지성적’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점거는 비상총회에서 직접투표를 통해 의결되었으며, 점거 과정에서는 물리적 폭력도 기물의 파손도 일어나지 않았다.

본부 점거라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 이루어진 본질적인 이유는 파행적으로 추진된 서울대 법인화 문제에 있다. 지난 수년간 본부 쪽은 교직원 임용의 자율성과 재정 확충을 기치로 삼아 서울대를 법인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문제는 이 과정이 학생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교직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채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법인화가 졸속으로, 파행적으로 추진되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는 또 있다. 서울대는 기본적으로 국가에 속해 있기에 그것이 국립대에서 법인으로 바뀌는 데는 국회에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 문제는 서울대 본부에서 작성한 법인화 법안이 입법 과정에서 정부에 의해 상당한 변화를 거쳤으며, 그 변화가 바람직한지에 대해 어떠한 의미있는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채로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학생들의 선택은 본부의 무책임하고 비민주적인 태도가 초래한 결과이다. 그러나 정작 이와 같은 사태에 직면한 본부는 학생들의 소통 요구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대신 단지 본부 점거는 불법적인 행위라는 억지 매도를 라디오처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 쪽은 ‘일단 법이 통과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데, 나는 한국 교육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서울대 법인화와 같은 큰일을 추진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더 완벽을 기하기는커녕 이미 정해진 일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 모습은, 법인화 추진의 절차적 정당성을 묻기 전에 책임 의식의 부재를 느끼게 한다. 본부의 노력에 따라 한국 사회의 미래가 바뀔 수 있는데도 그들은 문제를 회피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미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현재의 사태를 ‘서울대 법인화’에 국한시킨다면 이는 사안의 중요성을 절반만 표현하는 셈이다. 서울대 법인화는 단순히 서울대만의 일이 아니라 전국의 국공립대를 법인화하는 과정의 초석이기도 하다. 짚고 갈 점은 전국 국공립대 법인화 과정의 선두에 서 있으며 가장 많은 혜택을 받으리라고 선전하는 서울대조차도 정부로부터 충분한 재정 지원을 약속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의 국립대들이 받을 수 있는 재정 지원은 과연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이대로라면 먼저 국공립대 법인화를 실시한 일본에서 국립대 다수가 정부로부터 사실상 버려져 제대로 된 교육·연구환경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 사례가 한국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비이성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라고 비난받고 있는 서울대 학생들의 선택은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합리적인 태도의 소산이라 불려야 한다. 전국 국공립대 법인화의 초석이 될 서울대 법인화를 파행적으로 추진해온 본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비교할 때 진정으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움직이는 이들은 누구인가?

며칠 전 본부 쪽은 학생들에게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학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에 대해 학생들에게 보복성 조처를 취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보낸다. 서울대 총장 본인조차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법안에 대해 민주적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급하게 따라가는 것을 학생들이 나서서 함께 고쳐보고자 하는 행동을 법적 조처로 협박하는 것이 그렇게 강조하는 지성과 경륜의 모습인가? 학교 쪽은 서울대의 미래와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줄 법인화에 대해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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