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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6 19:34 수정 : 2011.06.06 19:36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정선옥 부산시 북구 금곡동

우리는 부산에 살고 있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 부부입니다. 결혼한 지 6년 동안 해마다 한번씩은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가에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부양의무자라는 법 조항에 번번이 걸렸습니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올해는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이의신청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의신청에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보통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십시오. 비장애인들의 경우, 40살이 된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지 부모님이 부양의무자가 되어 아들과 며느리를 먹여 살리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우리 장애인도 그 상식선에서 살고 싶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년에 두세번은 부모님이 생활비를 보태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살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그것마저 주시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왜냐고요? 이젠 몸이 안 좋으셔서 막노동조차 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돼가지고 보태드리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거기다 대고 돈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재산도 그렇습니다. 그 재산은 그분들이 평생 피땀 흘려 이룩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살겠다고 그걸 팔아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들도 다 살기

어려운데 누가 도와줄 수 있나요?

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재작년에 돌아가시고 여든이 다 되신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혼자 사시는 막내 이모님과 함께 지내시다가 최근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생활비라도 드렸어야 하는데, 자식이면서도 도리를 하지 못하는 마음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가끔 친정엄마한테 가면 이모 모르게 2만~3만원을 쥐어주시고 들어가십니다. 그걸 받고 돌아오는 마음은 정말 뭐라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이해하실 수 있나요? 그 아픈 마음을… 부모님한테 우리는 아픈 가시입니다.

친정 오빠는 솔직히 말하면 빚은 있지만 웬만큼 자리잡고 잘삽니다. 하지만 오빠한테는 손 내밀고 싶지 않습니다. 결혼하기 전, 죽어도 오빠한테는 손 안 내민다고 해놓고 결혼했습니다. 30년 넘게 가족들한테 짐이 돼서 살았는데, 출가외인이 된 지금 또 짐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에 갈 일은 더 많아집니다. 한번 가면 한 사람 앞에 1만원 넘게 나옵니다. 제 남편과 제가 지난 3~4개월 동안 몸이 안 좋아서 거의 2~3일에 한번씩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니 집 임대비와 관리비를 미루기 일쑤였습니다.

남편이 지난해 어렵게 검정고시에 합격해 디지털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남편이 공부하는 게 소원이라고 알고 있기에 없는 돈을 쪼개고 쪼개서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적금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병원비가 너무 들어서 적금도 해약하고 남편은 휴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보다 더 가난한 분들이 있다는 걸, 어렵게 혼자 사시는 할머님이 서류상에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담당 복지사가 그러시더군요. 도와주고 싶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 안 된다고요. 법이 나쁘다면, 아니, 나쁘다는 걸 알면 법을 고칠 생각을 왜 안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면 수정도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법과 제도가 잘되어 있다면 우리 장애인이 힘들게 나가서 집회를 하고 목숨 걸고 싸우지도 않을 겁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에게 한달에 50여만원을 가지고 생활해보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장애인은 누구나 나라에서 돈 100만원씩 타서 좋겠다고. 우리가 집회를 하면, 비장애인들은 “또 뭐를 달라고 할 거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특별한 것이 아니고 남들보다 더 대우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할 때 제대로 공부하고, 다니고 싶은 곳 마음 놓고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애기 낳아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게 우리 장애인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입니다.

이게 너무 큰 욕심일까요? 우리 부부도 그렇고 다른 장애인의 소박한 꿈도 이루어주지도 못하고 있는데, ‘복지국가’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떠들어대는 이 나라의 모순이 너무 싫습니다. 이게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도 못하는 몸뚱어리! 자식된 도리도 형제간 우애도 지킬 수 없는 삶! 평범한 삶도 영위할 수 없는 삶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모님과 형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저희 부부는 이제 더이상 갈 데도 손 내밀 데도 없습니다. 기초생활보장법을 바꿔주세요. 복지 예산을 깎지 말아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한이 더는 깊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이 깊고 깊은 한을 어떻게 할까요? 제발, 제발, 제발 우리 두 사람뿐만 아니라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이 대한민국의 모든 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기초생활보장법을 꼭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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