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라 / 최예륜 |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서울의 한 쪽방에서 91살 할아버지가 기초노령연금 9만원을 포함한 복지지원금 26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딸 셋이 있지만 이들 역시 이제 70살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런데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면 할아버지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딸들의 소득을 파악해야 한다는 기가 막히는 소리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나 그냥 이대로 살다 죽으면 되니까 딸들한테는 절대 연락하지 말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한 국민을 국가와 사회가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러나 ‘생계를 달리하는 1촌 이내의 혈족과 그 배우자’를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부양 능력이 있다고 간주하여 수급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소득과 재산이 모두 최저생계비보다 낮아 수급 기준에 해당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규제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각지대 인구는 103만명에 이른다. 전체 기초생활수급자의 3분의 2에 달하는 규모다.
현행법에 따르면, 예컨대 소득이 전혀 없는 홀로 사는 노인의 자녀가 4인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을 경우, 이들의 월수입(재산을 월소득으로 환산한 금액까지 합산)이 256만원을 넘으면 이 노인의 생계를 자녀가 완전히 책임지고 있다고 간주된다. 이는 평균 가구소득의 70%에도 미치지 않는 비현실적인 수준이다. 이런 부양의무자 제도는 적용 기준이 가혹하다는 문제도 심각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가난한 이들의 자존감과 빈곤으로 인해 취약해진 가족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절망적인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생활하는 삼남매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한 대통령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직후 보건복지부는 ‘복지 사각지대 전국 일제조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일시적인 조사와 구제조처 외에도 이미 드러난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사각지대의 해결 없는 ‘복지’와 ‘친서민’은 있을 수 없다.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제도가 10년이 넘도록 방치해둔 사각지대에 폐지 줍는 노인들, 시설에 갇혀 인간다운 삶을 꿈꿀 기회조차 못 갖는 장애인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국회에서 조만간 법 개정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가난한 이들의 생존의 최후 보루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맞서 싸우겠다는 ‘복지 포퓰리즘’도 뭣도 아닌 복지의 기본일 뿐이다. 가난한 이들을 절망으로 내모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자 기준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빈곤의 책임은 이제 더이상 개인과 가족에게만 떠맡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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