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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3 19:43 수정 : 2011.06.03 19:45

한국청년연합회 소속 ‘일과 아이를 위한 시민행동’ 회원들이 2006년 9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파파쿼터제(아버지 육아휴직 할당제) 도입과 육아휴직 제도 개선을 위한 출산 파업’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호전 공연기획자

지난 3월1일 저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하던 일을 1년간 그만두고 육아휴직을 통해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불안함과 초조함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좀더 행복한 가정으로 거듭나고 싶었습니다.

회사에는 1월에 육아휴직에 대해 구두로 보고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 창립 이래 남자 육아휴직은 처음 있는 일이라 약간은 당황하셨고 저의 경력 단절에 많은 조언을 해주셨지만 충분한 얘기 끝에 허락해주셨습니다.

2002년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공연기획 일이 천직임을 알고 진실되고 정직하게 일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고난과 기쁨, 그리고 좌절과 재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마도 아이가 없었다면, 저는 직장생활의 똑같은 프로세스로 더 힘들어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막상 1년간 아이만을 돌본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배우지 않은 요리도 설거지도 걱정이 되었지만, 제일 큰 걱정은 ‘아내와의 관계가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아빠를 싫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또다른 인간관계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두달에 한번, 열흘씩 해외출장을 갔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아이와 친해져야 했고, 처가 식구들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것을 올해에도 또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좀더 안정되면 해외출장을 가거나 회사에 출근해도 110%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1년간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안 보던 요리책을 보고 공부하기를 3개월, 이제는 나만의 레시피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된장찌개에는 제가 좋아하는 두부와 감자를 듬뿍 넣고, 콩나물은 비빔밥으로의 변신을 시도해봅니다. 또한 아침 잠이 많은 저를 위해 밥통에 고구마와 감자를 넣어 예약취사로 아침밥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아이와 제가 좋아하는 달걀을 이용해 스크램블, 버터달걀말이 등 다양하게 요리하면서 육아휴직 전에 느꼈던 두려움들이 새로운 즐거움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는 도중 아이가 제 안경을 음식에 빠뜨려도, 아이가 길에서 고집을 부려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에 참고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육아휴직을 함으로써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줄어든 수입은 육아휴직의 최대 단점과 부담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돌봐주는 분을 두는 대신 어린이집으로 바꾸니 지출이 많이 줄었습니다. 또 생각 없이 지출하던 생활비의 감축도 있습니다.

3개월간 아이의 전담 육아를 담당하면서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배웁니다. 매일 정리해도 다시 흩어지는 집안 살림들, 설거지 거리와 빨래, 눈처럼 사뿐히 쌓이는 먼지들까지…. 열심히 하려고 하면 더 끝이 없어 보이는 육아 일을 앞으로 9개월은 전담으로 해야 하고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그동안 바쁜 회사 일과 자신감 부족으로 미뤄두었던 배움의 갈증을 방송댄스와 기타를 배움으로써 해소하고 육아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의미있게 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여건과 회사에서의 눈치, 그리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육아휴직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포기하고 계신 남성분들, 기회가 된다면 육아휴직에 한번 도전해 보십시오. 1년 뒤 멋지게 사회에 컴백하기 위한 귀중한 시간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그 확신을 믿고 오늘도 아직 똥오줌 못 가리는 아들과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윤호전 공연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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