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기 문학평론가
왜냐면 |
[왜냐면] 선진국·후진국이라는 말에 대하여 |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죽이고 뤼순 감옥에 도착한 지 사흘 만인 1909년 11월6일, 안중근은 ‘한국인 안응칠의 소회’라는 글과 ‘이토 히로부미 죄악 15개조’를 써서 검찰 쪽에 제출하였다. ‘한국인 안응칠의 소회’라는 글에서 밝힌 내용의 한 조각은 이렇다.
“무릇 문명이란 것은 동서양 잘난이 못난이 남녀노소를 물을 것 없이 각각 천부의 성품을 지키고 도덕을 숭상하여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이 제 땅에서 평안히 생업을 즐기면서 같이 태평을 누리는 그것이라. 그런데 오늘의 시대는 그렇지 못하여 이른바 상등사회의 고등인물들은 의논한다는 것이 경쟁하는 것이요, 연구한다는 것이 사람 죽이는 기계라. 그래서 동서양 육대주에 대포 연기와 탄환 빗발이 끊일 날이 없으니 어찌 개탄할 일이 아닐 것이냐. 이제 동양 대세를 말하면 비참한 현상이 더욱 심하여 참으로 기록하기 어렵다.”
내가 이 글에서 눈여겨본 것은 ‘이른바 상등사회의 고등인물들은 의논한다는 것이 경쟁하는 것이요, 연구한다는 것이 사람 죽이는 기계라’라는 말이다. 서양 사람들을 그는 ‘상등사회’라고 불렀고 그들이 하는 일이란 경쟁을 부추겨 무기생산에 앞장서서 사람 죽이는 기계나 만드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 패들의 등밀이로 일본이 그따위 남의 나라 훔치는 길에 따라나섰고, 거기 이토 히로부미라는 꾀죄죄한 인물이 나타나 한국을 집어삼키는 일에 앞장섰으며, 그래서 안중근은 평안한 자기 생활 터전을 다 버리고 늙은 도적 이토를 쏘아 죽였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팔짱만 끼고 앉아서 이따위 나쁜 일들을 우두커니 지켜보기만 해야 할 것인가? 정말 서양은 선진국인가? 무엇이 앞섰다는 말인가? 부라퀴 짓(악행)이 앞선 나라를 선진국이라 이르는가? 그래서 후진국은 부라퀴 짓이 뒤져서 뒤진 나라인가? 이런 말을 한국 지식인들이 아무 의심조차 없이 여기저기 쓰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무기 장사나 아편 장사 또는 돈놀이 따위로 재미를 보았고, 여기저기 들쑤셔 전쟁이나 일으켜 무기나 팔아먹는 서양을 정말 앞선 나라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야만인이라는 굴레는 그들 서양 사람들이 짊어진 덫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덫을 뒤집어 문명국·야만국, 개발·미개 따위 말을 만들어 전세계에 퍼뜨리면서 자기들이 선진국이며 문명국, 개발된 나라라고 떠들어댔다. 그렇게 떠드는 속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스스로 야만이라는 도덕적 열등감이 깊숙이 들어 있는 서양패들을 선진국이라 부르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들은 결코 앞서 나간 적이 없다. 남을 죽이는 무기 장사나 무기 개발에 앞선 것을 마치 도덕적 잣대로도 앞선 나라라는 투로 부르는 것은 코미디에서나 지껄일 이야기일 뿐이다. 누가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을 문명국이라 부르는가? 원자탄에 핵무기에 방사능에 지구를 온통 더럽혀 놓았고, 사람들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어 놓은 서양을 앞선 나라라고 부르는 건 웃기는 짓이다. 안중근의 앞 글 이야기를 좀더 이어본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멀리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짱만 끼고 아무런 방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을까보냐. 그러므로 나는 생각다 못하여 하얼빈에서 총 한방으로 만인이 보는 눈앞에서 늙은 도적 이등(이토)의 죄악을 성토하여 뜻있는 동양 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세계에 선진국·후진국은 없다. 그런 말만 나돌면서 서양 사람들 어깨에 헛바람만 잔뜩 집어넣어줄 뿐이다. 우스운 이런 말은 이제 그만 좀 쓰는 게 어떨까?
정현기 문학평론가
정현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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