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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23 21:44 수정 : 2011.05.23 21:47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에서 굴착기가 작업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강정이 들끓고 있다. 멀리 떨어진 제주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잘 알려지지 않는다.

강정마을은 일곱번째 올레길이 지나간다. 강정엔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와 동남참게가 설설 기고, 나팔고둥과 층층고랭이가 살고 있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 난데없는 굴착기가 바위를 깨고 있다. 군함들이 드나드는 해군기지를 지으려고 물경 12만평의 바다를 매립한단다.

제주에선 요즘 ‘세계 7대 경관’에 등재되도록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기가 막힌 것은 세계 7대 경관을 자랑하는 이들이 낯빛도 안 바꾼 채 유네스코 공식 생물권 보전지역이며 천연기념물 422호이자 해양보호구역인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세우겠다고 굴착기를 들이대고 있다. 4대강 사업 한다며 경기도 두물머리 일대에서 유기농을 짓던 농부들을 내몰고는 세계유기농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겠다고 외치는 것과 영락없이 닮았다.

자심해져가는 남북 대결의 국면에서 강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많은 이들이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킨다고 말한다. 내세울 만큼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평화를 말하되 평화로운 군대를 아직 보지 못했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말하되 아직 평화로운 전쟁은 보지 못했다. 전쟁을 막으려면 적보다 더 강한 군대와 무기를 지녀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말은 적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다. 강한 군대와 무기들이 마주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뿐이다.

힘없는 평화가 얼마나 공허한 것이냐는 힐문이 빗발치리라. 전쟁을 겪은 한반도에는 그런 무기의 논리가 앞선다. 민족상잔의 전쟁에는 승자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전쟁에 이기려고 대결하기보다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공허하지 않은 일이다.

어려운 살림에도 국방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돈을 냈고, 나랏일에 불만이 있더라도 안보라는 말 앞에는 꾹 입을 다물지 않았던가. 세계 최대의 무기 수입국 중의 하나가 되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최신 전투기와 미사일을 사들이는 짓을 해볼 만큼 해보지 않았던가.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핵무기뿐이다. 무기 경쟁의 종착점은 핵무기일 뿐이다.

제주는 특별도이다. 평화의 섬이라고도 불린다. 그 특별하고 평화로운 섬에 군사기지를 세우는 일에 반대한다. 국토의 허리를 철책으로 동여매고 산등성이마다 호를 파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제 호젓이 떠 있는 섬에까지 대결의 기지를 세우는 일에 반대한다.

강정은 평화를 향한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분단과 대결의 무기를 내려놓는 쉼표가 되어야 한다. 그곳만이라도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국가보안법이 없으며, 공멸의 핵무기도 있을 필요가 없으며, 미제 전투기며 미사일 없이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섬이 되어야 한다. 그곳에 가면 이산가족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세계 만민이 이웃으로 지내는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낭만적이라는 사람에게 묻는다. 더 강한 군대와 무기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낭만적이지 않은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해 하는 소리라는 이에게 묻는다. 나라를 동강내어 동포끼리 총부리를 겨눈 전쟁도 자랑이라고 지금도 툭하면 군복 차려입고 거들먹거리고 다녀야 하는가. 진실로 부끄러워할 일은 후손들에게 분단과 대결을 물려주는 일이다.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를 세우는 일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강정에 해군기지 대신 평화의 쉼표를 찍자. 일촉즉발의 무기를 내려놓고 쉼표 하나 찍어두자. 강정마을의 외침이, ‘강정은 안 된다’는 마침표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강정도 안 되고, 화순도 안 되고, 속초도 안 되는’ 쉼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강정이 무기 없는 세상,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는 쉼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 어디에 해군기지를 세워야 하느냐고 걱정하는 이에게 말한다. 해군기지를 만들려 하지 말고, 해군기지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바란다. 전쟁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평화를 지키려 애쓰기를 바란다. 평화는 강력한 무기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내려놓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강정에 쉼표 하나를 찍어두자. 대결과 분단으로 치닫는 국토의 가슴에 쉼표 하나 찍어두자. 이시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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