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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20 21:33 수정 : 2011.05.20 21:33

언제부터일까. 아침 햇살이 부끄럽다고 느껴진 것은.

7시30분, 새벽바람을 안고 현관 앞까지 부지런히 배달된 우유가 이미 서늘한 냉기를 다 털어낸 지 오래인 늦은 아침, 나는 그 시간도 버겁다고 배부른 투정과 함께 차를 몰고 서둘러 집을 나서곤 했다. 이중주차된 차들로 길이 아슬아슬하게 비좁지는 않은지, 이삿짐 트럭이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미처 공사중이라는 표지판을 세우지 못한 전기나 상수도 공사 등으로 통행금지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이따금 바쁜 출근길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복병처럼 버티고 있을까봐 늘 조급한 마음으로 골목과 골목을 돌아나서기 바쁜 아침, 가장 화나는 것은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할아버지의 느린 발걸음을 발견할 때이다.

주거지 차량이 한쪽에 길게 주차된 좁은 골목길의 나머지 공간은 손수레 한대와 차 한대가 서로 비껴가기에도 위험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손수레가 골목을 돌아나갈 때까지 속도를 줄이면, 상황을 모르는 차들이 어느샌가 뒤에 바짝 달라붙어 경적을 마구 울려댄다. 그분들의 구부정한 몸이 빈 손수레라도 힘차게 끌 수 있을까? 차에서 내려서 손수레 미는 것을 도와드릴 수도, 빨리 달릴 수도 없는 젊은 운전자인 나는 화가 난다. 편안한 차에 올라타 출근하면서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나에 대해, 그리고 노인들이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고 고단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함에 대해.

내가 사는 아파트는 대학로에 있어서 언제나 사람들이 붐비고 밤늦도록 불이 환하고 생기 넘치는 풍경을 본다. 그러나 전날의 흥과 취기가 가라앉은 아침의 거리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광고지와 일회용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마구 굴러다니고, 대충 내놓은 종이박스가 물기에 젖어 구겨져 있다. 그 재활용품과 종이를 허리를 구부려 일일이 수거하기 위해 해질 무렵까지 노인들이 거리를 돌고 돌고 또 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은 하루에 몇천원 남짓 될까. 그리고 깨끗해진 거리에는 또다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한잔에 오천원 하는 커피를 마시고는 빈 잔을 버리고, 여기저기서 나눠주는 광고지를 생각 없이 받아 생각 없이 휙 거리에 그대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또 그 종이와 플라스틱을 주워 하루하루 돈을 벌어야 하는 노인들이 고단한 몸을 뒤척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밤의 거리를 보며 퇴근하고 그 아침의 거리로 다시 출근하는 나는, 노인들의 ‘이미 고단한 발걸음’이 시작된 대한민국의 아침이 부끄럽고 화가 난다. ‘기초노령연금 9만원으로 버티는 한국 노인들’(<한겨레> 5월18일치 9면)이란 기사를 읽으며, 노후에 ‘복지’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빈곤’으로 전락해야 하는 어두운 내일을 본다. 우리는 모두 미래의 노인들이다.

친언니가 파견근무로 몇년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살 때, 그곳에 몇달간 머물면서 내가 본 풍경은 굉장히 생소했다. 아침 일찍 문을 연 마을의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조간신문을 읽는 노인들을 항상 볼 수 있었고, 호수를 산책하며 운동을 하거나 정원을 가꾸는 건강하고 즐거운 노인들을 볼 수 있었고, 슈퍼를 비롯한 어디에서도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일하는 노인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짧은 시간 동안 보고 느낀 단편적인 경험들이 전부가 될 수는 없음을 안다. 그러나 그렇게 피부로 느끼고 마음에 와 닿은 생각들이 결코 가벼운 감정적 발상은 아니라고도 확신한다. 국의 간을 보기 위해 국을 다 마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몇년 전 어느 낯선 독일 마을의 일상은 나에게 그런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은퇴 후 월 350만원 연금을 타는 스웨덴 철강노동자’(같은 지면)의 일상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나는 왜 선진국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복지’가 일부 선택받은 이들의 특권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라는 그들의 생각이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이, 인간의 생애주기에 맞추어 권리를 누리고 존중받을 수 있는 곳, 내가 생각하는 미래이다. 어린아이들은 안전한 놀이터에서 마음놓고 뛰어놀고, 한창 에너지 넘치는 청소년들은 오후 3시에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며 여가를 보내고, 부모들이 평일에도 아이와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시간에 퇴근하고, 노인들은 당당하게 일하거나 황혼을 평온하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사회. 휠체어와 유모차가 어디든지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된 사회를 원한다.


아이들을 위한 온갖 영재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마트 문화센터로 나 또한 바쁜 걸음을 하다가, 입구의 나무의자에 동상처럼 온종일 앉아 공허한 하루를 보내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또 한번 부끄러움을 느낀다. 요즘 백화점의 명품매장에서는 베이비·키즈 의류상품이 품절되어 못 팔 지경이라는데, 곧 무더워질 여름을 앞두고 매일같이 손수레를 끌어야 할 노인들이 점점 더 많아질 대한민국의 시계는 어쩌면 거꾸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김소라 울산 경의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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