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과외보다 필요한 것은
아이에 대해, 교사에 대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저변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요?
홍명희 반안중 교사·부산시 해운대구 좌동
저에게는 흔히 말하는 ‘엄친아’ 아들이 있습니다. 지방 공립고를 졸업하고 사교육 없이 지난해 정시로 서울대의 원하는 과에 입학했습니다. 사교육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영어전문학원을 다녔습니다. 학원비를 내기 위해 학원에 갔다가 원어민 교사의 눈을 피해 집에서 가져간 책을 읽고 있는 아들을 창문을 통해 보고 학원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60점대의 수학성적을 받아왔기에 놀라서 수학전문학원을 찾은 적도 있습니다. 중학교 과정을 원한다고 했지만 고등학교 진도를 나가면서 중학교 부분을 보충하는 방식밖에 없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등록했다가 지쳐가는 아이의 표정을 보고 한 달 만에 그만두게 하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서 묻습니다. 아들은 학교 다니는 내내 전교 1~2등만 했겠다고. 아들은 책을 매우 좋아했을 뿐 학업성적이 탁월하진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받은 성적이 40명이 좀 안 되는 반에서 10등 정도였습니다.
아이의 공부에 변화가 나타난 것은 중3 여름방학입니다. 저와 아이는 방학 동안 타이 치앙마이에 있었습니다. 우연히 여행 갔다가 물가도 저렴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도 많아서 아들과 함께 방학을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오전에는 영국인 선생님에게 아이와 둘이 영어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도서관을 다녔습니다. 중3 겨울방학도 그렇게 엄마와 영국인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고 도서관을 다녔습니다. 외딴곳에서 아들과 함께 보낸 두 방학은 직장생활에 지쳐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엄마의 미안함을 만회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아들이 쓴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등 성장기 아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들은 중학교 성적이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갈 수 있는 성적이 아니어서 공립고에 입학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였습니다. 물론 사교육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한 다른 아이들보다 영어·수학 성적이 조금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학원 수업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모르는 것은 수학을 더 잘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는 방식으로 공부해나갔습니다. 아이는 선생님보다 가까이 있는 친구가 더 편했던 모양입니다.
아이 아빠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독려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고3 때도 시험 마지막 날에는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아이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엄마인 제가 한 일은 사교육비를 지출하지 않아 생긴 조금의 경제적 여유로 중학생이던 아들과 함께 방학 동안 유럽·동남아·중국 등을 배낭을 메고 여행한 것과 아침에 대문을 나서는 아들에게 수업시간에 집중하라는 말을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들을 사교육 없이 서울대에 보낸 비법(?)을 묻는 사람에게 이렇게 얘기하면, 주변의 교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교사가 아닌 엄마들의 표정은 좀 다릅니다. 그 얼굴에서 학교 수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짐작으로 읽습니다.
정말 학교 수업으로 충분하지 않은 걸까요? 또 충분하지 않다면 사교육으로 메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사교육으로 메워지는 것일까요?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은 좋은 결과를 얻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자주 잊는 것일까요?
평범하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를 고액의 과외교사에게 보내지 못하는 것을(또는 소신으로 보내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해, 교사에 대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저변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요? 내 아이가 다소의 어려움을 겪지만 극복하면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믿음, 충분하진 않지만 선생님들이 건전한 상식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 아이나 학교의 부족함을 사교육 시장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의 노력의 결과인 책이나 교육적인 목적을 가진 많은 프로그램으로 보충할 수 있다는 믿음,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아들의 작은 좌절에 속이 상하더라도, 자신의 판단에 믿음을 갖고 조금 더 멀리 보며 어렵지만 나와 내 아이에게 맞는 길을 선택해가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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