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사교육은 공교육의 적대적 상대가 아니라 학교 안 교육의 일부 보완재로서 기능할 수 있는 엄연한 교육재인 것이다. 학교교육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학습이나 보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느 과목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도움 주는 구실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학원을 다니고 그렇지 않고의 차원이 아닌 것 같다. 학원을 다니든 그냥 학교만 다니든 이른바 명문대에 가기만 하면 아이들의 장래가 행복하게 확립되는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편법과 부조리함을 보면서 성장한 우리의 아이들이 과연 올바른 가치관과 생명관, 사회관을 형성하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기에 학원을 싸워야 할 배타적·적대적 상대로 생각하지 말고 단기적으로는 선별적으로 선용하면서 멀리는 교육정책이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을 공부하고 중차대한 백년대계의 소임을 맡길 수 있는 바른 일꾼들을 지속적으로 골라내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부모세대가 고민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학원을 보낸다고 하여 패자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하여 승자는 더욱 아닐 것이다. 학원을 상대로 지고 이기고는 작은 전투에서 승패한 것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좀더 길고 큰 싸움의 상대는 학원이 아니라 공교육이고, 사교육은 죽여야 할 악이 결코 아니며, 공교육은 시급히 살려야 할 환자라는 생각이다. 공교육이 믿음직하게 회복되면 사교육은 왜소해질 것이다.
왜냐면 |
[왜냐면] 상대는 학원이 아니다 / 이승렬 |
이승렬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나는 조그만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학원을 대상으로, 그것도 마치 전장에서 혹은 경기에서 적군을 상대로 이기거나 지거나 한 듯한 연이은 글들을 보며 동시대에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부모세대들이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지금의 성적지상·학벌만능의 풍토를 학원으로 통칭되는 사교육이 조장한 것인가? 흔히 말하는 학교교육의 붕괴가 학원들의 경쟁력이 월등하게 우수한 데서 비롯된 것인가? 결코 아니다. 바로 정부의 교육정책이 이 모든 심각한 문제들의 원인 공여자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학과 성적만으로 평가하고 개인의 자질과 특성은 성적에 밀려 무시당하고 심지어 차별당함으로써 아이들이 다양한 재능을 발휘할 기회도 얻지 못하는 성적만능의 획일적 교육환경이 과연 공교육의 바른 모습일까?
무엇인가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대 정부들은 소비자 물가 상승에 대한 불만이 팽배할 때마다 ‘사교육과의 전쟁’ ‘사교육 죽이기’ 등 구호를 걸고 정책의 실패가 마치 사교육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며 여론을 무마해왔다.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서민들은 그 소리에 현혹되어 금방이라도 학원이 없어지거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지금까지 흘러왔다. 그런데 왜 학원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을까? 지금 이토록 많은 학원 공급 환경을 누가 조장했는지, 그 많은 학원의 소비자는 왜 있는 것인지 잠깐이라도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사교육을 억제한다면서 학교에서 시행하는 학습 정책은 과연 어떤가? 초등학교는 일제고사 성적으로 평가와 지원을 한다 하니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몰아붙인다. 이런 현실에서 학교교육이 흔들림 없이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을까? 방과후 학교란 명목으로 학교 지붕만 빌려서 하면 누가 무엇을 가르치든 다 공교육인가?
사교육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공교육이 제 기능을 충실히 함으로써 아이들이 좋은 교육의 혜택을 평등하게 누리고 그 교육만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치와 능력을 발휘하며 존중받고 살아가는 사회 구조가 형성된다면 사교육은 최소한의 영역만 생존하고 더 이상 소비자의 눈길을 끌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된다면 학교 안과 학교 밖 교육의 유기적 교류를 통해 더 좋은 교육이 만들어질 수 있고 그 선순환의 수혜자는 우리의 자녀가 될 것이다.
두해 전 중학교 2·3학년인 미국 아이들 두명이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베이커즈필드시립청소년교향악단 멤버였다. 바이올린을 잘하게 된 계기를 물으니 기본적인 악기들을 학교에서 배우고, 더 배우고 싶은 경우 학교와 연결된 외부 기관에서 저렴한 비용에 더 배우도록 연결시켜 준다고 했다.
이렇듯 사교육은 공교육의 적대적 상대가 아니라 학교 안 교육의 일부 보완재로서 기능할 수 있는 엄연한 교육재인 것이다. 학교교육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학습이나 보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느 과목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도움 주는 구실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학원을 다니고 그렇지 않고의 차원이 아닌 것 같다. 학원을 다니든 그냥 학교만 다니든 이른바 명문대에 가기만 하면 아이들의 장래가 행복하게 확립되는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편법과 부조리함을 보면서 성장한 우리의 아이들이 과연 올바른 가치관과 생명관, 사회관을 형성하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기에 학원을 싸워야 할 배타적·적대적 상대로 생각하지 말고 단기적으로는 선별적으로 선용하면서 멀리는 교육정책이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을 공부하고 중차대한 백년대계의 소임을 맡길 수 있는 바른 일꾼들을 지속적으로 골라내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부모세대가 고민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학원을 보낸다고 하여 패자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하여 승자는 더욱 아닐 것이다. 학원을 상대로 지고 이기고는 작은 전투에서 승패한 것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좀더 길고 큰 싸움의 상대는 학원이 아니라 공교육이고, 사교육은 죽여야 할 악이 결코 아니며, 공교육은 시급히 살려야 할 환자라는 생각이다. 공교육이 믿음직하게 회복되면 사교육은 왜소해질 것이다.
이렇듯 사교육은 공교육의 적대적 상대가 아니라 학교 안 교육의 일부 보완재로서 기능할 수 있는 엄연한 교육재인 것이다. 학교교육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학습이나 보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느 과목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도움 주는 구실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학원을 다니고 그렇지 않고의 차원이 아닌 것 같다. 학원을 다니든 그냥 학교만 다니든 이른바 명문대에 가기만 하면 아이들의 장래가 행복하게 확립되는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편법과 부조리함을 보면서 성장한 우리의 아이들이 과연 올바른 가치관과 생명관, 사회관을 형성하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기에 학원을 싸워야 할 배타적·적대적 상대로 생각하지 말고 단기적으로는 선별적으로 선용하면서 멀리는 교육정책이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을 공부하고 중차대한 백년대계의 소임을 맡길 수 있는 바른 일꾼들을 지속적으로 골라내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부모세대가 고민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학원을 보낸다고 하여 패자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하여 승자는 더욱 아닐 것이다. 학원을 상대로 지고 이기고는 작은 전투에서 승패한 것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좀더 길고 큰 싸움의 상대는 학원이 아니라 공교육이고, 사교육은 죽여야 할 악이 결코 아니며, 공교육은 시급히 살려야 할 환자라는 생각이다. 공교육이 믿음직하게 회복되면 사교육은 왜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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