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5.03 20:27 수정 : 2011.05.03 20:27

아이들이 왜 수학을 싫어하는지
아들은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학원교육 없이도 우등생 만들겠다는
나의 ‘소신’은 허영으로 판정났다

윤현희 서울시 강남구 도곡2동

우리 아이는 중2 남학생이다.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성실하고 총명하고 착하다. 사교육이라고는 ‘ㅇ선생영어교실’의 테이프와 교재로 영어공부를 하는 것뿐인데도, 초등학교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해주었다. 중학교에 와서도, 초등학교 때 중학교 수학을 끝내놓은 주위 친구들보다 수학 성적이 더 좋았다. 아들에게 수학은 언제나 즐겁고 호기심을 갖게 하는 과목이었고, 수를 갖고 노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어 아이들이 수학을 왜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수학 선행학습은 시키지 않았다. 나의 지론은 ‘수많은 교육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하여 가장 이해하기 쉬운 나이에 가르치게 되어 있는 내용이 교과과정이고, 따라서 어려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이해하려 시간낭비할 필요 없다. 수학은 그 나이가 돼서 배우면 바로 이해된다’였다. 또한 ‘우리 아이는 수학에 수월성이 있는 아이다’라고 여겼다. 문제는 이거였다. 교육학자와 교육과정, 그리고 아들의 능력에 대한 과신! 그 과신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영어와 수학은 수준별 수업이라고 하여 상·중·하반으로 나뉘었다. 수학 상반이었던 우리 아이가 수업시간에 가장 자주 들은 말은 “너희들 이건 다 알지?”였단다. 수업시간에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안다는 것을 전제하고 문제풀이만 시킨다는 것이다. 상반이라 대부분이 선행학습이 돼 있기 때문에 그랬단다.

아무리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라도 뭘 배워야 문제를 풀 것 아닌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수학 선행학습을 시켜야 하지 않냐며 걱정해주던 친구들.(물론 나는 나의 ‘지론’을 들먹이며 외려 그들을 설득했다. 모두들 “참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는데 나는 그때 참 통쾌했다. 그러나 그때 그렇게 통쾌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들은 정말 뭔가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거였고, 나를 대단하다고 한 것은 ‘너 그러다 후회한다’의 다른 말이었던 거였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 왜 선행학습을 그렇게 강조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수학시간에는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제야 “이른바 ‘스카이(SKY)대’를 가려면 아빠의 재력, 아이의 실력, 엄마의 정보력 3박자가 갖춰져야 하는데, 나는 그중 마지막 하나가 모자라네”라는 아들의 비아냥 섞인 원망을 들으며 수학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학은 어차피 혼자 해야 하는 거라는 또다른, 그 망할 놈의 ‘지론’을 고집하며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 아이는 잘 따라 했고 따로 문제집을 풀었다.

그래서 겨우겨우 90점 이상을 받았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처럼 수학을 좋아하고 즐거워하지는 못했다. 1학년 겨울방학 때 혼자서 인터넷 강의로 2학년 1학기 선행학습을 하던 아들은 이제 아이들이 왜 그렇게 수학을 싫어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수학이 이렇게 재미없는 것, 오직 압박으로만 다가오는 과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더 확실해진 것은 올 3월, 4년간 서울 홍은동과 도곡동을 오가던 남편의 편의를 위해 우리가 강남, 그것도 도곡동으로 이사를 오면서였다. 아이가 전학한 학교는 이전의 강북 학교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7배쯤 많다고 했다. 아마도 예전 전교 등수가 여기선 반 등수가 될 것 같다던 아이의 말은 이번 중간고사를 보면서 사실로 판명되었다. 여기서도 문제는 수학이었다. 혼자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문제집을 열심히 풀면 90점 이상은 받을 수 있었던 강북과는 달리 이곳의 수학 시험문제는 손을 못 댈 문제가 5문제쯤 있었단다.


공부를 덜 했느냐? 아니다. 우리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지켜본 이래로 가장 열심히 했다. 1000문항 이상의 문제를 풀었고, 학교에서 내준 프린트물을 4번 이상 풀었다. 오답노트도 만들어 연습했고, 어렵기로 소문난 문제집의 최고 바로 아랫단계(최고단계 문제는 원래 고등학교 과정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란다)까지 모두 풀었다. 모르는 문제는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그러나 시험 결과는 다른 아이들보다 15점 이상 낮았다. 문제가 너무 어려웠고 시간도 부족했단다. 아이는 시험을 보면서 ‘더이상 혼자 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바로 친구들이 다니는 수학학원을 알아왔다.

그래, 더는 고집부리지 말자. 나의 ‘지론’은 모두 틀렸다. 수학은 일찍 많이 알수록 좋고 당연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모르는 것은 바로바로 물어봐서 명쾌히 알아야 한다. 시험문제를 왜 그렇게 어렵게 내는가,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있는지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은 필요 없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수학 성적을 가장 편리한 변별 수단으로 여겨, 될수록 수학문제를 어렵게 낸다. 이러는 판국에 어떻게 수학을 혼자 하나. 학원교육을 거부하지 말자. 까짓것, 하나 보내면 된다. 그러면 몸도 편하고(무식하게 1000문제씩 혼자 끙끙대며 풀지 않고 학원 선생님들이 정선한 문제만 풀고, 모르면 바로바로 물어봐서 알면 되니) 맘도 편하다. 이 편한 것을 왜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은 걸까.

그러면서도 맘이 쓰리다. 속상하다. 속이 많이 상한다. 그 이유는… 패배감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걸고 학원교육과 한판 대결을 벌였던 거다. 안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모두가 말하는 그런 학원교육 없이도 우리 아이는 우등생이라는 자랑거리를 만들겠다는 허영이 있었던 거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나의 소신과 지론은 무모함과 허영으로 판정났다. 나는 패배했다. 분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학원교육에 분패했다. 내가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한, 우리 아이가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하려면 나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한다. 아침 8시에 나가 오후 4시에 돌아온 아이를 다시 학원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내 패배의 대가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