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세력은 10대들에게
화장품과 사치재를 교묘하게 권한다
‘1318세대’에게는 화장품 대신
마음에 갑옷을 입힐 독서가 필요하다
이강선 부산 하남중 교사·동아대 문창과 2년
“이 인형에겐 많은 옷이 필요해. 여기 눈부시게 예쁜 야회복과 진짜 밍크코트가 있어. 테니스복, 스키복, 승마복, 여러 속옷들도 있단다. 자 꼬마야, 이 옷들을 갖고 인형이랑 놀아도 며칠만 지나면 또 지루해질 거란 생각이 들지? 그래, 그럼 네 인형을 위해 더 많은 걸 장만하면 되는 거야”라고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는 회색신사의 입을 빌려 말한다. 인형이 아닌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옷이 필요할까? ‘1318세대’에게 화장품과 값비싼 옷을 사라고 끊임없이 소매를 잡아끄는 기성세대의 얼굴은 뻔뻔하기까지 하다.
나는 중학교에서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수업시간에 아무리 가치 있는 삶을 소리 높여 외쳐도 그들이 우상으로 삼는 연예 스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미치지 못함을 느낀다. 심지어는 특정 회사에서 만들어낸 점퍼와 신발과 가방을 똑같이 지닌 아이들끼리 무리를 만들어 노는 모습을 보고 절망한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지닌 물품만이 동질성과 친함의 정도를 대변하는 듯이 느낀다. 차라리 흰 고무신에 특정 회사의 상표를 그려서 비싼 신발을 신는 친구들을 조롱하던 옛날 아이들이 그리워진다.
영리한 마케팅 세력들은 끊임없이 또래 연예 스타를 동원해서 아이들에게 화장품과 턱없이 비싼 의류를 교묘하게 권한다. 아이들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선망을 소비한다.
세계 어디에도 10대들에게 화장품을 권하는 사회는 없다고 한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대부분은 화장을 해본 경험이 있거나 실제로 화장을 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는 학생은 나무람의 대상이 되었지만 요즈음 교사들은 못 본 체하기가 일쑤이다. 가지지 못한 아이가 부러워해 마지않는 값비싼 옷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를 저지하면 학부모로부터 인권을 침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거센 항의가 잇따른다.
지금 10대의 소비 패턴은 부모세대의 고통을 동반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인 그들 자신에게 더 뼈아픈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값비싼 소비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놀이동산, 노래방, 피시방에서 돈 없이는 놀지도 못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비참한 현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미래에 더 잘 놀 수 있고 값비싼 소비재를 더 많이 차지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배운다.
‘1318세대’에게는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대신 마음에 갑옷을 입힐 독서가 필요하다.
독서는 자신을 벗어나서 타인의 처지에서 바라볼 수 있는 무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또한 끝없는 호기심으로 질문하게 하고 ‘내’가 아니라 ‘우리’로 존재할 수 있는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게 한다.
하지만 10대들에게 화장품과 사치재를 권하는 마케팅 세력은 그들의 용돈을 독서가 아닌 다른 곳에 사용하도록 강하게 유도한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은 10대들이 독서를 선택하게 할 것이냐, 사치재를 선택하게 할 것이냐에 대한 두 가지 힘의 싸움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을 거듭해왔지만 극심한 경쟁 속에서 ‘1318세대’는 걸음마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이 나약하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에게 화장품과 비싼 소비재가 아니라 책을 쥐여주라. 그래서 죽음을 선택할 만큼 견고하게만 보이는 경쟁의 벽을 말랑하게 만들 수 있도록 마음을 무장하게 하라. 무한 상상력으로 늘 같은 길을 걸어도 어제 걷던 길과 오늘 걷는 길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때 철벽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배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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