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7.04 18:13 수정 : 2005.07.04 18:13

병역의 의무를 기준으로 국적 취득과 포기의 진의를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모호한 일이며, 지금처럼 국경의 구분이 엷어져 외국인이나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조차 없애고 있는 마당에, 내국인들을 국적 문제로 차별한다는 것은 그 실효성 면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온라인상에서 찬반여론이 들끓고 있다. 홍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지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법안 지지자들은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 반대표가 많았던 열린우리당 게시판이 마비됐다고 한다. 나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이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몇자 적어보려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마련된 ‘재외동포법’의 취지는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재한국인들과 동등한 지위를 줌으로써 그들을 배려하자는 뜻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최근 원정출산 등으로 인한 병역기피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지난 5월24일부터 새롭게 발효된 국적법 개정안에 따라 “이중국적을 가진 자는(남자) 병역의무를 이행한 이후에나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자 시행 전에 많은 수의 부모들이 자식의 한국 국적을 포기시키기 위해 줄을 잇는 상황이 발생했고, 당연히 여론은 이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홍 의원은 “이중국적자가 만 18세가 되는 해 1월1일 이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재외동포로서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개정안을 발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신성시하는 병역의 의무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얌체짓’에 대한 국민적 공분에 힘입은 법안 발의인데, 문제는 이 법안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 요소가 다분하며, 실질적인 실효성도 의문이고, 국제화 시대에 역행하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법안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기존 국적법에 따라 이제 병역기피를 위한 원정출산이 무의미해진 상황인데도 추가로 이들-법안발효 전에 국적을 포기한 2천여 어린이(대다수가 10대 미만이다)-에 대해 성년이 된 이후에 “외국인으로 살든지, 아니면 군대를 선택하라”는 식의 예고를 통해 예비 범죄자 취급을 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발의한다는 것은 그 정당성을 떠나 국회가 해야 할 일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다.

국회는 정부를 감시하고 잘못된 헌법을 바로잡고 민생 법안을 심의하고 상정하고 제정하는 곳이지, 이런 식으로 여론에 따라 특정 국민들에게 보복조처나 하는 일이 정당화되면 앞으로 국회는 정부를 감시·통제하는 곳이 아닌 국민을 감시·통제하는 기관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런 즉흥적 법안이 여론의 폭발적 지지를 얻는 데는 언젠가부터 누리꾼들의 댓글과 인터넷 여론조사가 민심을 대표하게 된 배경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들 댓글들 중 상당수는 사안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과 판단을 통한 의견보다는 각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몇 줄의 기사를 보고 아주 쉽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 것들로서, 이런 누리꾼들의 습성이 여론을 편향되게 몰아가지 않나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홍 의원이 발의한 ‘재외동포법 개정안’은 언뜻 보면 애국심이 가득찬 누리꾼들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내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봤을 땐 ‘포퓰리즘과 애국심을 미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자는 비이성적인 법안’이다.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한 국적 포기는 당연히 도덕적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명 한국인으로 커나갈 이들에게 장차 법적으로 내국인 지위까지 박탈하고 외국인 취급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애국심을 강요하는 국수주의이며 개인에 대한 국가의 폭력인 것이다. 더구나 병역의 의무를 기준으로 국적의 취득과 포기의 진의를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모호한 일이며, 지금처럼 국경 구분이 엷어져 외국인이나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조차 없애고 있는 마당에, 같은 내국인들을 국적 문제로 차별한다는 것은 그 실효성 면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 법안의 부결을 놓고 여야는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지나친 여론몰이의 수단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이참에 모순이 많은 국적법을 수정·보완해 내국인은 물론 재외국민 700만명이 자부심과 애국심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진우/노점상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