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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19 20:12 수정 : 2011.04.19 20:12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카이스트 문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카이스트 졸업생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진중권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총체적 문제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형국이라 그 문제를 모두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실제로 실행하기에는 힘이 부쳐 학생들의 스트레스 부분만 짚어보려 한다.

순위 매기기. 이게 참 재미있는 일이다. 순위 매기기를 재미 요소로 잘 활용한 <나는 가수다>라는 좋은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모여서 능력을 뽐내고, 그들을 평가단의 잣대로 한줄로 세우는 것이다. 최고의 기량을 가진 사람들을 한줄로 세워서 1등부터 꼴찌까지 가리는 방식이다.

꼴찌로 결정된 가수는 김건모와 정엽이었다. 이들은 최고의 가수인데, 이 경쟁에서 꼴찌가 됐다. 그렇다고 이 꼴찌들이 경쟁력이 없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다수 대중의 입맛에는 안 맞을지 모르겠으나, 각자의 개성으로 우리 가요계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취향을 채워줄 필요가 있는데, 이 꼴찌들이 그 분야를 넘치도록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가수 본인들도 평소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저 가수도 노래를 잘하고 나도 노래를 잘하는 가수인데 개성은 전혀 다른 가수이다.’

그런데 한줄로 세우자 이 개성이 갑자기 무시되면서 꼴찌가 정해졌다. 꼴찌가 된 가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옆에 같이 있던 가수들도 큰 충격을 받아 눈물을 쏟기까지 했다. 최고들만 모인 자리에서 순위를 정하면 반드시 꼴찌가 생긴다는 평범한 진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것이 나의 일, 내 친구의 일이 되자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 엄습해왔다. 예능의 큰 재미 요소가, 나름 공정하다고 생각했던 규칙이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준 것이다.

카이스트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국의 수재들을 모아놓고 한줄로 세웠다. 당연히 꼴찌가 생겼다. 당사자와 주변인들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이것만으로도 자살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꼴찌라도 당연히 그만의 개성으로 얼마든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고 알려주면서 그 충격을 완화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카이스트의 현실은 정반대였다. 그들을 질책했다. 국민 세금의 무거움을 느끼라고 질책했다. 벌금을 걷었다. 그냥 벌금도 아닌 징벌적 벌금을 걷었다. 정신적 충격은 배가됐다. 그러고는 말한다. 경쟁은 필수라고. 나약한 정신상태를 고치라고. 그들이 경쟁을 안 하고 놀고 있었나? 그렇게 닦달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고생하고,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 대해 한국 사회는 아직 헷갈려하고 있다. 개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키우라고 하는데, 우리는 계속 한줄 세우기를 해 왔다. 그렇게 줄 세우기를 하지 않는 게 불공정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서남표 총장에 대한 개혁 실패 인정 요구는 투표에 참여한 카이스트 학생 852명 가운데 찬성 학생이 과반수에 10명이 못미치는 416명(49%)에 그쳐 부결됐다. 반대는 317명(37%), 기권이 119명(14%)이었다. 창의성 교육과 개성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14%는 아직 망설이고 있다. 과거 방식의 줄 세우기가 경쟁력을 더 키우는 방향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대한민국은 경쟁 과잉이다.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을 따뜻이 감싸줄 편안한 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힘들어 자살을 했다. 우리나라의 창의성 교육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그들의 개성을 죽였을 때, 대한민국의 다양성도 줄었으며 아울러 대한민국의 경쟁력도 줄었다.

다양성을 키워줄 수 없는 사회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진정한 개혁이 필요하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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