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한겨레’ 175호에 실린 ‘나는 그날, 죽었다’
한결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
주말마다 <한겨레>와 함께 오는 ‘아하! 한겨레’를 들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늦은 저녁을 컵라면으로 대신하며 신문을 읽어가던 순간, ‘아’ 하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바라본 세상’이라는 코너에 한 학생기자가 쓴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 때 낼 포트폴리오에 자신의 ‘불온한’ 생각을 솔직하게 쓰면 안 되는 것인지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내 나이 20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시를 준비했고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어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의 어려움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평소 언론에서 말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쓴 책을 즐겨 읽고 그분들의 강연을 많이 듣던 나는 자연히 가치관과 사고방식도 진보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른바 ‘좌파’라 불리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거나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쓸 때도 나의 진보적 가치관이 많이 묻어나오게 되었다. 내 생각과 가치관을 최대한 진정성 있게 쓰려고 노력했으며, 그 결과 선생님께서도 잘 썼다고 말해주셨다.
하지만 문제는 지난해 8월 대학에 제출할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부터였다. 내가 평소에 쓴 독후감, 강연 소감문, 생활글 등을 정리하면서 조금, 아니 굉장히 난감해지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이 글들을 제출했을 때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한다거나, 어린 학생이 벌써부터 좌파적인(?) 생각을 가졌다고 단정지어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하며 내가 쓴 글들을 고쳐서 제출할 것인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제출할 것인지 고민했다. 결국 부모님은 나의 선택에 맡기셨고,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글들을 그대로 제출하게 되었다. 만약 여기서 입시에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무너진다면, 앞으로도 나의 신념과 가치관에 맞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포트폴리오를 대학에 제출하고 나서도 솔직히 한번도 후회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1차 합격을 기다릴 때까지 나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하다가 곧바로 왜 그랬냐며 자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제출한 포트폴리오는 합격이라는 도장을 받게 되었고, 대학 입시라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나의 도전은 성공하게 되었다. 이 성공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아주 컸다. 대학이라는 곳에서 청소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좌우로 나누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2차 면접을 볼 때도 조금은 조심스러웠지만 내가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솔직히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이 학생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건 딱 한가지다.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이 학생이 현재 고3이라면 앞으로 9달만 있으면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이후에는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 느끼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항복해 글 속에 나타나는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게 된다면, 앞으로의 삶 속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똑같은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 학생은 ‘앞으로 나 말고 이런 학생들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빌지만, 그런 부탁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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