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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05 20:56 수정 : 2011.04.06 10:56

영화 ‘공공의 적’의 한 장면

나는 이 주주총회의 주인인데,
저 ‘깍두기’와 직원을 부리는 경영자는
횡령·배임의 책임을 진 사람들인데,
저들은 왜 저리 당당하고
주주는 왜 이리 왜소할까?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

지난해 경영진의 불법 비리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기업체를 포함해 두곳의 주주총회를 다녀왔다.

먼저 주주총회장 자체가 가관이다. 입구부터 까만 양복을 입은 ‘깍두기’들이 줄지어 늘어섰고 회사 직원이 총출동해 경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주주는 ‘테러리스트’가 된다. 주주가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는 신성한 장소에서, 주주에 의해 위임된 권한을 가진 자가 감히 주주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주주총회장에 들어서니 깍두기 반 직원 반으로 이미 자리가 꽉 찼다. 극히 일부의 기관투자자와 소수주주가 참석해 있다.

사전 배포된 총회순서를 보니 이건 주주의 회의가 아니라 ‘경영진 마음대로’ 시간이다. 주주가 말을 하거나 의견을 내는 순서가 아예 없다.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된다. 대표이사가 보고를 끝내고 “어떻게 할까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미 짜고 나온 주주란 사람이 판에 박힌 동의를 구하고 또 역시 뒤쪽 한끝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속사포 재청이 나오고 좌중 전체에서 우렁찬 재청이 합창된다. 혹시라도 진짜 주주가 끼어들까봐 단 1초의 간격이나 틈도 없이 일사천리로 안건은 착착 통과된다.

두곳 모두 지난해 수십억~수천억원의 회사 자금 배임·횡령으로 대표이사가 구속되었는데, 1억원 가까이 연봉을 받는 감사란 자는 사과 한마디 없이 마치 남의 일처럼 천연덕스럽게 감사보고를 한다. 그건 자신들과 상관없는 검찰의 일이며, 아직은 유무죄를 다투는 대표이사의 억울한 옥살이란 게 이들의 공식 입장이다.

수십억~수백억원의 일반투자자 돈을 맡아 운영하는 기관투자자 대표는 참석만 하고 말이 없다. 투자자의 돈을 맡아 먹고사는 자로서 서릿발 같은 책임 추궁을 하거나 불법 경영으로 주가를 반토막 낸 책임을 물어야 할 텐데, 아니면 일본식 할복까진 아니더라도 횡령·배임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을 어떻게든 드러내야 할 텐데 전혀 ‘아니올시다’다. 화이트칼라 멋쟁이 양복 차림의 금융맨이 그들의 전부다.

개인투자자도 있지만, 사실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상당수 개인투자자는 기업의 주인의식을 가지는 주주가 아니다. 지난해 말 주주명부 폐쇄를 기점으로 한 의결권 주주 상당수는 3월 말 주주총회 때가 되면 이미 주주가 아니다. 지금은 다른 종목을 기웃거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초특급 주주총회 말미에 겨우 손을 들어 몇마디 할 기회를 가졌다. 그게 다다. 주주총회는 끝나고 기자들이 우르르 주위에 몰려든다. 주주총회에서 했던 말의 열배 이상을 기자에게 말하게 된다. 깍두기와 직원들이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난 섬처럼 존재한다. 사실 난 이 주주총회의 주인인데. 저 깍두기와 직원을 부리는 경영자는 회삿돈 수십억~수천억원 횡령·배임의 책임을 진 사람들인데. 이 반역의 자본주의,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저들은 도대체 왜 저리 당당하고 주주는 왜 이리 왜소할까? 법은 어디에 있고 자본주의는 누가 지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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