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주 대학생·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23일치 ‘김건모의 재도전 논란을 보며’에 대한 반론
‘병사와 식량, 그리고 신뢰 중에서 버려야 한다면 공께선 가장 먼저 무엇을 버리겠습니까? 첫번째는 병사다. 두번째는 식량이며 마지막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는 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교 사상의 시초라 불리는 공자와 그의 제자 사이의 이 대화는 매우 유명한 일화다.
개인적으로 근래 예능 프로그램의 이슈가 되는 ‘나는 가수다’의 논란을 보며 이 일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김지영씨의 주장이 첫 탈락자로 선정된 김건모씨나 김영희 피디를 맹목적으로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사람의 향기’ 또는 룰의 비인간적인 부분을 들어 어물쩍 넘어가기엔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번 논란은 일개 예능 프로의 해프닝을 넘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과 연관됐기 때문이다.
김지영씨는 서바이벌 형식의 룰 자체에 대한 잔인함을 지적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그 부분에 관한 논의는 이미 담당 제작진의 선택이 끝난 상태다. 처음부터 서바이벌 형식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그 잔인함을 담보로 시청률을 선택한 것을 두고 이제 와서 룰을 변경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세부적으로 보면 이번 김건모의 재도전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사람의 향기와 원칙에 대한
신뢰는 전혀 다른 문제다.
원칙이 강자에게 적용될 땐
더욱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첫째, 재도전은 이유를 막론하고 합의한 원칙에 대한 파기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법과 제도는 일종의 예측 가능성을 제시하는 구실을 한다. 그리고 그 합의된 기준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예측한 행동을 하고 이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사회는 유지되는 법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제시한 가장 큰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탈락자 선정이었다. 그것도 첫주엔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출연자들에게 심리적 충격을 미리 경험하게 하지 않았는가? 설혹 김건모의 재도전과 같은 룰을 똑같이 적용한다고 해도 이미 합의된 원칙이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또다른 룰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의한다면 그땐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 재도전이라는 룰 변경의 주체는 엄연히 시청자들이다. 변경의 주체는 작게는 당일 녹화에 참석한 관객들이고 크게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일 것이다. 설사 서바이벌 형식의 원칙을 부분적으로 수정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제작진의 권한 밖이다. 관객과 시청자들의 동의 없이 임의로 제작진이 룰을 바꾸는 행태가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을 우롱하는 처사로 보일 수밖에 없다. 셋째, 첫 탈락자와 재도전의 대상이 다름 아닌 출연진들 중 가장 선배인 김건모였다는 점이다. 김건모가 아니라 그 누가 해당되더라도 재도전 기회는 주어졌을 거라고 주장해도,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권력 관계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아직도 상명하복, 철저한 위계질서 문화의 폐해가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 김건모의 재도전을 보며 느낀 건 허탈함 그 자체였다. 요컨대 김지영씨가 말한 사람의 향기와 원칙에 대한 신뢰는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원칙이 강자에게 적용될 땐 더욱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각종 비리와 부패, 승패에 대한 불복은 대개 원칙의 불신에서 발생한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면에서 사회적 강자들이 보여준 수많은 행태가 그것을 방증한다. 정치판에서는 경선에 불복하고,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공적자금 투입으로 살아난 재벌들의 탈세가 바로 원칙에 대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시청자들은 더더욱 ‘나는 가수다’에 많은 기대를 걸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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