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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25 18:16 수정 : 2011.03.25 18:16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동북아북한연구센터장

서재를 뒤적이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 제목을 발견하였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읽어본 <원발(原發: 원자력발전소) 대논쟁>(1989년)이라는 책이었다. 주요 내용은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제기된 일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하여 원전 추진파와 반대파가 벌인 논쟁을 정리한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 아래, 25년 전의 양쪽 주장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한다.

먼저 원자력발전소 추진파인 전력회사들의 입장이다. “원전 건설시에는 과거의 지진 발생 현황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선행된다. 이를 근거로 발생 가능한 최대급 지진을 설정하고,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설계를 한다. 특히 안전상 중요한 설비는 일반건물 설계 내진력의 3배에 달하는 지진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설계되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지진해일 대책도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전상 중요한 기기나 시설(냉각펌프 등)은 지진해일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엄격한 기계설치 기준에 따라 설치되었으며, 이에 따른 정지(整地)도 잘 되어 있다”는 설명이었다.

25년 전 원전추진파의 논리는
대부분 거짓말이 되어 버렸고,
반대파의 이야기는 진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대파의 논리는 심각하다. “현재의 지진학 수준에서 지진단층이 출현할 장소, 출현한 거리의 연장거리나 변위 정도 예측은 전혀 불가능하다. 지진 때 발생하는 지반 변형은 원자로 사고에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으나, 내진 설계에서는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원자로시설에 지진이 덮칠 경우 비록 내진력이 일반건축물의 3배 이상이더라도 기초 암반 자체가 커다랗게 변형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원자로가 파괴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자료에 의하면, 후쿠시마 원전은 2등급 지진 감시지역인 특정관측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대지진의 위험성을 낮게 평가했고, 이에 따라 지진해일 대책도 미흡했다. 후쿠시마 원전은 13~14m의 해일에 냉각펌프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1771년 4월에 발생했던 야에야마 지진의 최대 해일 높이인 85.4m, 1896년 6월 산리쿠 지진의 38.2m 해일 기록은 무시한 듯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상황을 바라보면 무언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결과만을 본다면, 원전 추진파의 논리는 대부분 거짓말이 되어 버렸고, 반대파의 이야기는 진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들은 일본에서는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설계 사고, 운영 미숙으로 간주하였다. “원전 안전국가 일본” “안전도 발군의 일본”만을 외쳐왔다.

후쿠시마현에는 재해대책기본법과 원자력재해대책특별조치법에 의거한 지역방재계획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계획 중에는 75쪽에 달하는 원자력재해대책도 있다. 원자력재해예방계획, 재해응급대책계획, 재해복구계획으로 세분화된 계획안은 ‘매뉴얼의 나라 일본’답게 피폭 의료체계, 긴급수송, 범죄 예방 등의 모든 영역까지 꼼꼼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엄격한 매뉴얼보다는 후쿠시마 원전의 운영 주체인 도쿄전력의 어정쩡한 설명이 우선됐다. 정확한 사고원인보다는 사실 은폐에 급급했던 것이다.

도쿄 수돗물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능 물질이 270㎞를 날아가 도쿄 상수원을 오염시킨 것이다. 방사능 오염의 광역성을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지진이나 해일, 원전 사고 등 재해 예방과 관련된 정책세미나가 적지 않게 개최되고 있다. 매스컴에서 특집 프로그램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일본의 원전 추진파와 반대파의 논쟁 사례처럼 ‘절대 안전론’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원전 반대파의 주장에도 논리의 비약이나 입증되지 않은 ‘카더라’식의 억측도 존재한다. 하지만 너무도 위험한 원자력이기에 정부나 관련 공기업들은 그러한 시각도 경청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바라보면서 ‘만약에’라는 가정을 해본다. 반대파의 주장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식의 소치로 폄하하지 않았다면, 매뉴얼 만능의 편의주의, 아전인수식 행정시스템을 현장 중심의 선제적 대응으로 전환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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