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22 20:36
수정 : 2011.03.23 10:07
‘가수 서바이벌’이라는
잔인할 수 있는 그 룰에서
가수 김건모와 김영희 PD는
출연진들을 숨쉬게 했다고 본다
김지영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1가
3월20일 <문화방송>(MBC)에서 방송된 ‘나는 가수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가수 김건모의 재도전을 반대하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공정사회의 ‘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공정사회를, 그 ‘룰’을 신화처럼 생각한다. 무엇이 공정사회이고, 무엇이 공정한 룰인가? 개인이 없는 것? 약속은 약속인 것?
어제 방송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김건모가 잘못된 선택을 했구나’였다. 자신이 탈락을 받아들이면 뒤에 탈락할 후배 가수들이 훨씬 편하게 방송할 수 있을 텐데. 누구 말대로 천하의 김건모가 멋지게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의도했든 안 했든 ‘가수 서바이벌’이라는 잔인할 수 있는 그 룰에서 가수 김건모와 김영희 피디는 출연 가수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구멍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젊은 제작진과 시청자들에게 어느새 익숙해진 ‘공정한 룰’이 갖는 비인간적인 부분에, 김영희 피디의 이미 낡았지만 절대 버릴 수 없는, 예능이되 사람의 향기를 잃지 않는 가치관이 ‘룰’을 깨는 용단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일밤의 시청률 저조로 다시 복귀한 김영희 피디가 몇 달을 고전한 이유도 이런 가치관의 문제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몇 년 동안 우리가 즐겁게 지켜봐왔던 버라이어티 예능프로그램을 생각해본다. 우리 시대의 신화가 되어버린 그 룰에 의해 연예인들은 감춰야 할 이야기를 폭로하며, 남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으며, 서로 상대방이 먼저 실수하기를 기대하며, 온갖 곤혹스런 음식을 먹고 마시며, 엄동설한에 한데서 잠을 자고 있다. 물론 그 프로그램들에도 나름의 눈물이 있고 감동이 있고 재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한 사람의 존엄성이 웃음거리가 되는, 강자가 약자를 우습게 아는 사회의 또다른 룰에 젖어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김영희 피디의 ‘낡은’ 예능감에 다시 희망을 걸어본다. 애시당초 ‘가수 서바이벌’이라니 그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미 익숙해져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가수들의 도전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룰이 좀 바뀌면 어떠랴. 누군가 죽고 살 문제도 아니며, 어쩌면 우리 사회가 룰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몇 년 동안 ‘열린 음악회’를 제외하고는 황금시간대에 제대로 된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가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룰이 바뀌었으니 긴장감이 떨어지고 가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배 가수에게 쏟아질 비난을 우려해 이건 우리 모두가 책임질 일이라고 말하는 후배 가수가 있는 한 ‘나는 가수다’ 그 무대는 계속 진화할 것이고,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시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제작진·출연진)도 우리(시청자)도 몰랐을 뿐이다. 사람들은 가수의 이름값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온힘을 다한, 가장 마음을 울린 노래만을 생각할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예상을 뒤엎었다는 그 말. 그 예상은 결국 가수의 이름값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진솔한 무대에, 진정한 노래에 목마르다. 그리고 아름다운 그들은 ‘대중’가수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