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11 20:30
수정 : 2011.03.16 10:47
대다수 사교육 종사자들은
‘공공의 적’도 아니고
퇴폐업소 종업원도 아니며
정당한 경제활동 하는 전문가들이다
박철구 별하학원 원장·시인
# 1 몇 번의 해프닝을 거쳐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학원 교습시간이 일제히 제한됐다. 2008년부터 밤 10시까지로 교습시간 제한을 시행해 온 서울에 이어 올해 3월1일을 기준으로 경기·광주·대구도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밤 10시까지만 학원(교습소 포함) 교습을 하도록 강제했다. 강제 야간자율학습 및 보충수업 금지의 내용을 담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도 3월1일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이 조례의 제9조 2항에는 ‘학교는 학생에게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통해 사교육 종사자들─특히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들과 강사들─은 학원 교습시간이 밤 10시로 제한되면서 고등학교의 야간자율학습도 ‘자율’로 바뀔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경기도 내 절대 다수 지역의 현실은 우려한 것 이상이 되었다. 일선 고등학교에서 야간 ‘강제학습’을 계속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강화했다. 학원 수강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 것이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 및 학원 종사자들이 해당 학교와 주무관청인 도교육청에 항의하거나 어려움을 호소했으나, 그에 대한 반응은 과연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매우 일방적이며 무책임하다.
# 2 필자가 아는 ㄱ 원장은 선견지명으로 지난겨울에 이미 학원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들어갔고 ㄴ 원장은 학원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들어갈까 고민중이다. 아파트에 실제로 거주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교습시간 제한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ㄷ 원장은 학원을 운영하면서 밤 10시 이후에 과외를 하기 위해 오피스텔을 얻었다(물론 이것은 불법이다). ㄹ 원장은 얼마 전에 상가의 학원을 정리하고 빌라를 얻어서 종합학원 식으로 운영하고 있고, ㅁ 원장은 원룸을 몇 채 얻어서 방별로 국어·영어·수학·과학 강의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ㅂ 원장은 명문대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방송통신대에 등록했다. 대학생 신분이면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할 필요가 없고 밤 10시까지라는 시간제한도 없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오히려 세금 내면서 학원을 운영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낫다고 한다.
여건이 이보다 좋지 못한 ㅅ 원장은 불법인 줄 알지만 밤 10시 이후에 출입문을 잠그고 빛이 새어나가지 않는 커튼을 치고서 수업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ㅇ 원장은 학원에서 받는 급여가 밤 12시까지 수업하던 때보다 많이 줄어서 가정 경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지자 강사 하며 모은 돈과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를 담보로 은행 대출금을 얻어 학원을 냈는데 이제 폐업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상황이 더 좋지 못한 ㅈ 원장과 ㅊ 원장은 강사료와 임대료 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설비도 건지지 못한 채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육전문가로 10년 넘게 성실하게 살아온 ㅊ 원장은 현재 이민을 고려하고 있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ㅈ 원장도 이민을 고려했지만 과외업으로라도 생계를 꾸려가야겠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교묘한 편법과 불법으로 자구책을 찾는 학원들의 발상과 생존 전략에 대해 우리는 기발하다거나 지혜롭다고 해야 하는가, 비루하다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부정의하다고 해야 하는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편법’과 ‘불법’이 모두 예상된 일이라는 것이며, 이 ‘편법’과 ‘불법’이 아니고는 고등부를 주 대상으로 하는 많은 학원들과 강사들의 생존권이 크게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씁쓸하지만 이것이 사교육에 종사하는 ‘국민’들에 대한 우리 대한민국의 처사이다.
# 3 밤 10시까지만 수업하라는 규정을 지키면서도 학원을 무리 없이 운영해갈 묘안이 없을까를 필자는 꽤 오래도록 자문하고 지인들에게도 물어왔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묘안은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단순하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의 교습시간을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밤 10시까지로 제한하는 대신,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고등학교의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말 그대로 ‘자율’과 ‘보충’이 되게 하면 된다.
이것이 아니라면 여러 지자체에서 현재도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자정까지로 교습시간을 허용하거나, 아니면 지난달 14일부터 초·중학생은 밤 10시, 고등학생은 밤 11시50분까지로 교습시간을 현실적으로 차등 제한한 전남도 식으로 시행하면 된다.
그리고 차제에, 적지 않은 학생들이 떠들거나 자는 시간으로 이용하는 야간자율학습을 좀더 유의미하고 내실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각론들은 관계자들이 지혜를 모으면 될 일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국민들’인 사교육 종사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는 유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교육이 지니고 있는 폐해들과 그것이 파생하는 문제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교육 종사자들은 ‘공공의 적’도 아니고 퇴폐업소의 종업원도 아니며 정당한 경제행위이자 교육행위를 하는 우리 사회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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