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계는 너무 굶주려 있다
불합리한 제도로 점철돼 있다
언론은 지나치게 무관심하다
다들 다 무사하게 지내는지…
현미정 건축가·현도시건축 소장
며칠 전 젊은 영화인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을 달리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청춘이라 할 수 있는 나이에 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하니,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그 고통이 어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건축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에 만성피로와 지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모두들 무사히 잘 지내는지…. 이런 우울함으로 며칠을 보내던 중 11일치 어느 신문기사를 보고 기가 막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기사의 내용은 건축노벨상이라 일컫는 프리츠커상을 일본은 5번이나 받았고 한국도 그러한 건축 문화를 갖기 위한 방안들이었다. 물론 그 내용이 잘못되었거나 비난받을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건축에 관한 기사를 그렇게라도 써준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 방안들이라는 것이 너무도 한국 건축계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란 점에서 헛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누가 몰라서 그런 일들을 실천하지 못하겠는가?
그런 일들을 하기에 한국 건축계는 너무 굶주려 있다. 매일 밤을 야근과 철야로 지새우면서도 월급을 못 받기가 일쑤이고, 받는다 하더라도 평균임금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어떻게 양질의 설계를 생산할 수 있으며, 외국과 경쟁할 수 있는 건축 문화를 만들겠는가?
그런 일들을 하기에 한국 건축계는 너무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제도로 점철되어 있다. 우선 한국 건축의 설계는 건축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사나 시행사가 한다. 국가의 대형 건축사업이 대부분 턴키제도나 민자사업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이다. 건축의 70~80%를 차지하는 아파트도 민자사업의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건축가는 건설사의 수익성을 맞춰주는 하나의 기계일 뿐, 좋은 공간과 건축을 창출하는 크리에이터가 될 수 없다. 배급사의 입맛에 맞게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이치와 유사하며 그 정도는 더 심각하다. 설계를 하는 사람들이 설계를 할 수 없도록 제도화되어 있는데, 어떻게 좋은 건축이 나오고 그 건축을 외국에 소개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더불어 건설사와 정부의 이원관계가 건축가-건설사-정부의 삼원관계가 되기 때문에 곳곳에서 터지는 건설 관련 사업의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를 축소함은 물론 아파트 분양가가 낮아지는 것은 덤으로 올 것이다.
그런 일들을 하기에 한국은 도시와 건축에 너무 무관심하다. 이것은 많은 건축인들이 영화계를 부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건축 설계를 하다 영화 쪽으로 이직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어찌 됐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영화 관련 기사와 보도가 쏟아지고, 전문가뿐만 아니라 그 못지않은 일반인들의 평론과 비평이 넘쳐나고, 외국에서의 수상 소식도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그에 비해 건축은 한마디로 버려진 아이다. 지금 짓고 있는, 그나마 떠들썩한 과정이 보도됐던 서울시청의 건축가가 누구인지 아는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많아야 일주일에 한번, 두 시간을 보는 영화에 대한 관심만큼, 매일 24시간을 같이하는 우리의 도시와 집에도 관심을 갖는다면 자연스럽게 건축 문화는 조성되고, 그로써 본래적 이유, 좋은 환경에서 우리가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언론의 보도이다. 전시, 출판, 강연, 외국과의 교류 등은 이미 적지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보도되고 기사화되는 것은 드물다.
턴키, 민자, 현상설계의 과정과 결과를 중요한 건물만이라도 자세히 보도하고 알린다면, 공정한 절차와 대중의 관심을 이끌 것이며, 자동적으로 건축가의 분발과 양질의 건축이 생산될 것이며, 무엇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인 최고은 작가의 죽음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건축계에서 일어나지 않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고은님의 명복을 가슴 깊이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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