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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22 03:28 수정 : 2011.01.24 15:45

서울시는 세종로 일대를 한글 관광 단지로 새로 단장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참에 서둘러 바로잡을 것이 오목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다. 앙부일구는 하층민과의 소통을 배려한 공공 시계라는 측면에서 한글 정신과 맞닿아 있는 세종 시대의 상징물이다. 유감스럽게도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 있는 앙부일구는 가장 중요한 시각 표시를 세종 때의 앙부일구와 같이 복원한 것이 아니다.

물론 세종 당대의 앙부일구는 남아 있지 않지만, 다행히도 그에 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자세하게 남아 있어(1434. 음력 10.2) 복원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세종 때의 앙부일구는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배려하여 시각 표시를 동물신 그림으로 나타냈다. 이를테면 새벽 다섯 시에서 일곱 시까지를 가리키는 ‘묘시’(卯時)는 토끼신으로 나타냈다. 그런데 현대에 복원된 많은 ‘앙부일구’에는 이런 동물신 표시가 없다. 유일하게 한국표준연구소에서 1986년에 복원한 것만이 동물신 그림 표시가 되어 있다. 이 복원품은 현재 대전의 한국표준연구원 정문 옆에 설치 되어 있다. 아쉽게도 이 복원품은 앙부일구의 매우 중요한 받침돌을 제대로 복원하지 않아 반쪽 복원이 되었다. 세종은 시계뿐만 아니라 받침돌까지도 섬세하게 설계해 1미터 남짓한 받침돌을 키 작은 어린이들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낮은 2단 계단형으로 만들었다.

앙부일구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9년 전에 문자를 모르는 백성과의 소통을 고심하고 실현한 것이라 훈민정음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 시계다. 이를 제대로 복원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실용과학을 실현하려고 했던 세종 정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종이 처음으로 설치한 곳인 혜정교(광화문 네 거리 옆)와 종묘에 원형대로 복원하고, 세종대왕 동상 앞과 경기도 영릉의 앙부일구 등을 바로잡아 진정한 소통의 역사를 재현해야 한다.

김슬옹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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