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12 11:06
수정 : 2011.01.12 11:06
해외에서 메일을 확인하다
훌쩍 30만원 넘은 데이터 이용료
‘와이파이 무제한’ 광고는 물론
문자통보 기준에도 문제있다
지난 연말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지에서도 회사일이 못내 걱정스러워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였다. 스마트폰에 와이파이(wi-fi)가 자동 검색되었고 나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한 상태라 당연히 와이파이망을 통해서 메일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하였다. “12월 데이터 로밍 이용료가 20만원을 초과하였습니다”라는 문자가 들어온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스마트폰의 이런저런 기능을 조정하고 와이파이 접속을 해지하는 등 혼자서 낑낑대고 있었다. 그런데 30분 정도 지났을까 데이터 이용료가 30만원을 초과하였다는 문자가 또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마트폰의 앱들이 자동으로 업데이트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업무에 복귀한 뒤 억울한 마음이 들어 이통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알기로는 와이파이망을 통해서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것은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것이라 당연히 요금이 과금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통사의 답변은 해외에서 데이터를 송수신할 때는 그것이 와이파이망을 이용할지라도 로밍 요금이 과금된다는 것이었다. 이통사의 이런 답변에 정말이지 난감해하면서 나는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우선 이통사가 그렇게 떠들던 와이파이 무제한이라는 광고다. 와이파이는 어디에서나 무선으로 접속 가능한 국제표준이 아닌가? 그래서 해외 출장중일 때 국내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을 이용하여 와이파이망이 접속되는 곳에서 업무도 보고 그러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스마트폰에서는 이것이 허용되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통사의 광고는 허위광고가 아닌가?
20만원 초과되었을 때 자동으로 문자를 보내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면 1만원이나 5만원이 초과되었을 때 고객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왜 하필 20만원인가? 이통사가 판단했을 때 이 정도는 되어야 수지가 맞는 것일까?
내 생각이 이쯤에 미치자 이젠 내가 가입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도 탐탁지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들이 정한 2년 약정기간의 월정액은 과연 합리적인 가격일까? 그 가격은 과연 누가 정했으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통사가 제시한 요금 이외의 선택권은 없는 것일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든가 아니면 이통사가 제시한 요금제를 받아들이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든가 양자택일의 선택권밖엔 없는 것일까?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스마트폰 가입자가 7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1년 새 10배의 증가율을 보였고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사례는 더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용자의 무지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냐 또는 이통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나 다양한 요금제의 선택권은 이용자에게 있지 않으냐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스마트폰의 이용이 사업자와 이용자 간의 계약을 통한 거래라고 할지라도 이통사에 비해 이용자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약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약정기간 동안 월정액을 지불해야 하는 현재와 같은 체제에서는 700만의 잠정적 채무자를 상대로 한 이통사의 노련함과 이용자의 무지는 결국 거대기업의 승리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기고하고 있는 동안 내 통장에서는 자동으로 요금이 이체되었다. 물론 데이터 로밍 요금도 함께. 스마트한 시대에 스마트하게 돈을 버는 이통사가 단지 부러울 뿐이다.
안준오 미래전파공학연구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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