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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30 20:39 수정 : 2010.11.30 20:39

우리들은 지뢰가 아니다
터질까봐 지레 겁먹지 말고
청소년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지난 11월16일,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청소년의 사랑할 자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다시피 전국 주요 지역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학생 간 교제나 신체접촉을 금지하는 교칙을 명시하고 있다. 교칙에 적용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학생들끼리 손을 잡거나, 문자메시지를 지나치게 많이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한 경우도 있었다. 어이가 없다 못해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학생들의 마음과 감정을 교문 앞에서 싹둑 잘라낸 뒤 공부만을 위한 목각인형으로 박제해 버리는 게 이 사회의 교육기관이란 말인가. 사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그다지 새로운 사실을 접한 것도 아니건만, 새삼스레 충격이 밀려왔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청소년을 걱정한다. 스스로가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모두가 통틀어서 우리의 안전을 걱정하고, 현재를 걱정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그 걱정은 결과적으로 청소년의 탈선을 걱정하고, 성적을 걱정하고, 사랑을 걱정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항상 불안하게 바라보는 비청소년분들께 한마디 드리고자 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청소년은 3초 뒤에 터지지 않거든요!”

교문 앞에서 감정을 꺼내놓아야 한다고 하지만 교문 밖이라고 해서 그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지도 않다. 이 사회의 어느 땅에서든 청소년의 연애는 ‘불건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기관은 결국, 청소년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의 축소판일 뿐이다. 과연 ‘불건전’이 대체 무엇이기에. 누구의 눈에 맞춘 기준이기에. 사랑 앞에 형용사를 붙였다 떼는 것만으로 허락할 수 있는 사랑과 허락할 수 없는 사랑을 양분해 버린단 말인가.

사랑할 권리와 성적 자기결정권은 같은 영역에 속해 있다. 성적 지향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사랑할 권리, 사랑하는 만큼 스킨십을 하고 섹스할 수 있는 권리, 원하는 상대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 있을 권리가 모두 거세된 ‘사랑할 권리’는 대체 뭘 하라고 남겨진 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짝사랑과 편지는 풋풋하고 키스와 섹스는 음란하다는 단편적이고 유치한 잣대를 도덕적인 양 드러내지 말았으면 한다. 청소년의 사랑은 사랑을 하는 주체인 우리들이 생각할 문제이지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받을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은 3초 뒤에 터질지도 모르는 지뢰가 아니다. 터질까봐 지레 겁먹지 말고 청소년 또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제발 기억하길 바란다. 걱정이란 미명 아래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 정말로 필요한 것에 대해 진지하게 짚어보길 바란다.

김은총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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