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급조한 반쪽짜리 법률과
유사한 한국의 석면피해구제법
일본은 대상이 확대되는데도
한국에서는 점점 축소되는데…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 여전히 굴절된 한-일 관계로 인해 평생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받아온 한·일 양국 당사자 간의 슬픈 만남이 있었다.
일본 오사카부 남부의 센난시와 한난시를 중심으로 한 센난 지역의 석면폐 환자들과 충남 홍성군의 석면광산 피해자들이 ‘경술국치 100년, 굴절된 한-일 관계와 석면피해 비극’이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심포지엄을 열었다. 양국의 피해자 교류를 도모하고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석면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구제를 호소하였다.
센난 지역은 석면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석면섬유업 관련 공장이 밀접해 있었다.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공장을 경영하고 또 노동자로서도 활동하였다. 당연히 석면 피해자들도 재일동포들이 많았다. 이런 이야기는 최근에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일본 정부로부터도 관심대상 밖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충남 홍성의 석면광산을 일제가 개발했고, 해방 후에도 한국 기업에 의해 석면채굴이 계속됐다. 정부도, 기업도 광산노동자와 주민의 건강보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대책도 없었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4057명의 주민건강조사에서 973명이 이상 진단을 받았다. 그중 406명이 석면질환자로 판명되었을 정도다.
이런 심각한 석면질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석면피해구제법이 올해 제정됐다. 시행령과 규칙도 올여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석면피해구제법과 시행령 등이 여전히 굴절된 한-일 관계를 그대로 비쳐주고 있다. 구제법의 얼개는 석면 관련 질환을 규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요양급여과 치료비, 기타 장례비 등의 지급이 핵심내용이다. 일본의 구제법과 정말로 흡사하다. 일본의 법률은 2006년 3월 구보타 쇼크를 진정시키기 위해 빈약한 보상내용을 가지고 급조해 만든 반쪽짜리 법률이다. 이와 유사하게 만들어진 한국의 구제법은 시행령 등에서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피해자 구제의 취지와는 매우 동떨어진 내용들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다.
첫째로 대상질환을 중피종, 원발성 폐암, 석면폐로 규정하고 기타 질환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러나 시행령은 미만성 흉막비후, 흉막반, 석회화, 폐암과 석면폐의 합병증, 석면흉수 등으로 확대되어 있는 석면 관련 질환에 대해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법 시행 직후부터 수많은 개정요구가 있어 올해 7월부터는 환경성 노출 피해자의 경우는 석면폐와 미만성 흉막비후에 대해서도 구제법의 대상으로 확대했다. 같은 골자로 만들어져 있는 한국은 오히려 구제대상 범위를 더욱 축소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시행규칙에서 환경성의 시행규칙과 후생노동성의 시행규칙이 같이 제정되어 있다. 직업성 노출로 인한 석면질환의 경우, 석면폐는 물론이고 석면폐의 합병증, 석면흉수까지도 구제법의 구제대상 질환으로 포함하고 있다.
둘째, 시행령이 규정하는 질환의 인정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예를 들어 폐암 환자의 규정은 일본의 기준을 뛰어넘는 엄격한 인정기준으로 되어 있다. 중피종에 비해 더욱 많은 환자가 존재함에도 인정자 수가 중피종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는 일본의 문제점을 더욱 증폭시켜 한국에서 노정시킬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거기다 석면폐 환자의 등급에 맞춘 구제수준을 멋대로 규정해 정부의 일방적 잣대로 환자들을 다시 한번 고통받게 한다.
경술국치 100년, 일본의 멍든 제도를 통해 고통을 받아야 했던 석면질환 환자들의 아픔, 그리고 그 피해의 중심이었던 재일동포들을 구제하지 못하는 일본의 시스템을 더욱 굴절되고 왜곡된 형태로 여전히 이식하고 있는 한국의 석면피해구제제도의 모순을 하루빨리 개선했으면 한다.
김순식 오사카시립대 도시연구플라자 특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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