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해운대 화재 사건, 관용과 공정함을 /조승호 |
분명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번진 불길 속에서 54억원이라는 재산피해가 발생했으며, 자칫 인명피해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달 1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발생한 고층 오피스텔 화재사건은 결국 ‘인재’(人災)였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경찰은 이에 대한 책임으로 청소노동자 3명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입건했다. 화재의 원인이 미화원들의 휴게실에 꽂혀 있던 문어발식 콘센트였으며, 이는 원래 휴게 공간으로는 쓰일 수 없는 불법 증축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의 입건은 업무상 실화 및 과실치상 혐의에 따른 것이다. 즉 문어발식 콘센트를 사용하고 이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화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청소노동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문어발식 콘센트는 관리소장이 꽂아준 것이고, 정작 자신들은 콘센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휴게실 공간 역시 너무 협소해, 출퇴근 시 옷을 갈아입기 위해 15분가량 머무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들어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청소노동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들이 호소하는 억울함은, 법이 아닌 상식에 비춰 생각해봐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물론 청소노동자들의 잘못이 조금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화재가 발생한 휴식공간의 실사용자는 청소노동자들이었으며, 화재가 발생한 콘센트 역시 그들이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건물주가 제공한 불법공간과 관리소장이 가져다준 콘센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입장을, 그리고 스프링클러 하나 변변히 설치돼 있지 않았던 상황적 요인을 고려한 법의 관대함을 바라는 것이다. 법이란 게 현실 속에서 자로 잰 듯이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고, 수학공식을 풀 듯이 집행될 수도 없는 게 아닌가.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경기회복을 이유로 내세운 재벌총수들의 사면이나, 면책특권에 가까운 솜방망이 처벌에서 그러한 사례들을 충분히 목격해왔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끊임없이 ‘법치의 확립’을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신념은 촛불시위에 대한 강경진압 및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가차 없는 행정대집행과 죽음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법치의 중요한 가치는 ‘법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이다. 부산 청소노동자들이 입건되는 한편에서, 이른바 ‘스폰서검사’ 사건과 ‘청와대 대포폰 사건’에 대한 검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일고 있는 현 상황이 과연 진정으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현 정부가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준법을 강요하고 있고, 검·경은 권력의 비호세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비판들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는 두 눈을 가린 채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 이는 흔히 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징하는 형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나는 그가 눈을 가린 진짜 이유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눈감기 위함이고, 그의 저울은 권력과 이익을 저울질하기 위함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곤 한다. 검·경은 부디 부산 청소노동자들에게 꺼내든 그 칼을 거두어 달라.
조승호 대구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기사공유하기